세상의 상 중에서 제일 가치가 있는 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수여하는 노벨상이 아닐까 한다. 노벨상의 종류 중에서 문학상은 상 중의 상이다. 그런 상을 대한민국의 여류 소설가 한강이 받았다.
우리나라에 기라성 같은 원로 작가도 아닌 53세의 나이에.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다는 점에서 경탄이 나왔다. 처음에는 소설 제목이 한강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성이 한씨 이고, 이름이 외자인 강이다.
한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6년에 맨부커 국제상을 받고부터이다.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으로부터 받았다. 이번에 한강이 받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거론되는 작품은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대의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할 상황에 한편으로 마냥 그럴 수만 없는 그림자가 있다. 대한민국 문화의 쾌거임에도 그 그림자를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소설의 주제 때문이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작가만의 상상력 표현이다. 그러하지만 상상력이 인간성을 파괴시켜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동물과 달리 도덕과 윤리가 있다. 이를 근원적으로 헤치면 소설이 아니고 외설이다. 그 경계를 명확히 설정하기는 어렵지만 교양인 다수가 역겨워한다면 소설로 수용하기 어렵다. 또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하여 사실을 왜곡하여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진실인 양 가면을 쓴다면 역시 받기가 어렵다.
노벨문학상은 워낙 파괴력이 있기에 그럴 여지가 다분히 있다. 작가의 상상력 표현이 진실로 세상에 회자되고 사실로 낙인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년이 온다‘의 작품은 5·18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소년이 목격한 것은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시민과 학생이 공권력 군과 경찰로부터 고문과 죽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당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인간의 존엄성이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을 내세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은 소년이 목격하지 않은 이면이다. 거기에는 선량한 학생과 시민들을 앞세운 무장 폭도들의 흉측한 간계가 숨어 있다.
심지어 무장 폭도들에는 위장한 북한군도 상당수 있다는 의혹도 있다. 전 안기부장 권영해도 이에 관한 증언을 공개적으로 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하면 작가는 선을 악으로, 악을 선으로 표현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한림원 심사위원들은 그 소설의 역사적 맥락과 진실을 꽤 뚫지 못한 채 선무당 감상주의 소설가의 현란한 문장력에 넘어간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비유하자면 북한의 글솜씨 좋은 소설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6·25 한국전쟁에서 인민군 병사가 대한민국의 국방군에 의해 체포되어 혹독한 상황을 당하며 죽어가는 것을 묘사하는 소설을 발표하여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아무리 노벨문학상의 권위가 세계적이라 해도 우리는 수상을 맹목적으로 찬양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상 주최국인 스웨덴과 러시아(소련)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 러시아는 스웨덴을 여러 차례 침공한 사실이 있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가가 현란한 글 재주로 특정 사건을 배경으로 하면서 스웨덴 공권력의 비인간성만을 부각하는 내용으로 소설을 쓴다면 스웨덴 한림원은 그 소설가에게 노벨상을 수여하겠는가 하는 부분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도 그렇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4·3 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좌우의 폭거에 의해 안타깝게도 죽임을 당하였다. 좌익분자로 낙인이 찍혀 몰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진정으로 좌익 사상을 갖고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살기 위해서 좌익 세력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익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국가 폭력에 의한 선량한 시민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상처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4·3 자체는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좌익분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선량한 주민들을 방탄막이로 삼아 국가와 대척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희생을 당하였다. 누구에 의해 운명을 달리 하였건 그 가족들의 아픔은 치유하기 어렵다. 잊을 수 없어 작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대한민국의 건국 세력을 거대한 폭거로 묘사하였다.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나라 사람이건, 한림원 심사자이건 오늘날의 자유민주 국가인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어 있다. 4·3에서 무장 폭도들이 정의인 것으로 잘못 생각할 여지가 다분히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발상의 출발 자체가 방향이 틀려 있다.
선과 악이 명확히 분간이 되는 역사적 진실 앞에서 한강은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려는 공산주의 폭도들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오빠의 넋을 위로하고 그 남은 가족들의 아픔을 예술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여하튼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그녀의 소설들은 국내 및 해외 독자들에게 널리 읽혀 질 것이다. 독자들은 역사적 진실을 모른 채 5·18이든 4·3이든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 폭력을 규탄할 것이다. 완벽한 공산주의 선전 선동에 의식화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설마 한강이 그럴 의향이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할 때에는 단지 문장력의 기교에 앞서 진실을 파악하고 그 바탕에서 인간성을 꺼내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한강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까 기다려진다.
송 · 준 · 호 <대한민국투명세상연합 상임대표 /
나라지킴이 고교연합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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