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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위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단 |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펼쳐진 제267대 교황 선출 콘클라베의 실상이 11일 공개됐다.
한국인 성직자로는 47년 만에 콘클라베 투표권을 행사한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 현장 경험을 상세히 전하며, 베일에 가려졌던 교황 선출 과정과 그 분위기를 직접 증언했다.
▣ “표가 쏠렸다”…이틀째 4차 투표에서 교황 탄생
콘클라베는 5월 7일 오후 단 한 차례의 투표로 시작됐다. 이후 8일부터는 오전·오후 총 네 차례의 투표가 이어졌다. 추기경 133명은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앞에서 선서 후 교황 후보의 이름을 비밀 서면투표로 제출했다.
유 추기경은 “첫 투표에서는 몇몇 후보에게 표가 몰렸고, 두 번째, 세 번째 투표를 거치며 점차 유력 후보가 압축되었다”며 “네 번째 투표에서는 레오 14세에게 표가 몰리며 교황으로 선출됐다”고 설명했다.
당선이 확정되자 성당은 추기경들의 기립 박수로 가득 찼고, 이어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는 세계를 향해 새 교황 선출을 알리는 신호다.
▣ “정치적 야합? 오히려 친교와 형제애의 순간”
콘클라베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진행된다. 추기경들은 하루 전부터 전자기기를 반납하고 바티칸 숙소에 머물렀다. 유 추기경은 “휴대전화가 없어지니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됐다”며, 한 추기경의 유심칩으로 생긴 해프닝을 회상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외부에서 흔히 상상하는 정치적 담합이나 진영 싸움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투쟁적 분위기보다는 형제애와 공동체적 연대가 넘치는 자리였다”며 “영화 ‘콘클라베’는 엉터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밝혔다.
▣ 깜깜이 투표? “명부 공유에 5분 발언으로 성향 파악”
추기경단 대부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임명된 인물들로, 사전 교류가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투표 전 이미 충분한 정보 교류가 이뤄졌다고 한다.
유 추기경은 “133명 전원의 프로필이 담긴 명부가 사전에 배포됐고, 콘클라베 직전 회의에서는 각자 ‘5분 발언’을 통해 교회 방향과 차기 교황상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발언은 버튼을 눌러 신청하면 되며, 이름과 약력이 화면에 뜨고 통역이 즉시 제공됐다.
그는 “직접 누구를 뽑자는 말은 안 하지만, 각자의 발언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후보를 정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 유흥식 추기경의 ‘소중한 추억’
유 추기경은 이번 콘클라베에서 사용된 바인더, 펜, 명부 등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인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여해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 1978년 김수환 추기경 이후 처음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담고 있다.
“교황 선출이라는 중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은총”이라고 말한 그는 “그 순간의 경건함과 감동을 많은 신자들과 나누고 싶다”며 미소 지었다.
레오 14세 시대의 개막과 함께 바티칸은 또 한 번의 역사를 썼고, 한국 천주교는 세계 교회와 함께 걸어가는 발걸음 속에 그 존재를 새겼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