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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교황 레오 14세 |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12일(현지시간)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 들어서자마자 전 세계 언론인들의 기립박수가 터졌다.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은 유머와 겸손, 그리고 강력한 메시지로 첫 기자회견을 열었고, 현장은 마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열기로 가득 찼다.
교황은 “마지막까지 깨어 있고 박수친다면, 입장할 때의 박수보다 더 귀하게 여기겠다”며 농담을 건네는 여유로 말문을 열었다. 첫인사부터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한 그는, 바티칸의 전통과 자신이 가진 미국적 소통 감각을 절묘하게 녹여내며 세계 언론을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교황의 진짜 메시지는 유쾌함 너머에 있었다. 그는 “말과 이미지의 전쟁을 거부하자”며, 진실을 전하려다 투옥된 기자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이들의 고통은 국제사회의 양심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에 홀 안은 다시 박수로 뒤덮였다.
이어 그는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을 인용하며 “소통을 분노와 증오로부터 비무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압적 소통이 아닌, 경청하는 소통,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소통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말을 비무장시키면, 세상을 비무장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내내 레오 14세의 연설은 이탈리아어로 이어졌고, 삼성전자가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서는 영어 자막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연설 한 구절 한 구절마다 박수가 이어졌고, 세계 각국 기자들은 그에게 전폭적인 공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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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 기자회견 열린 바오로 6세 홀 |
교황은 연설 후 무대 아래로 내려와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 누군가는 그의 손등에 입을 맞췄고, 누군가는 야구공에 사인을 요청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그의 면모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다. 휠체어를 탄 여성에게는 직접 손을 얹고 축복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셀카를 시도한 참석자에게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경건함과 질서를 중시하는 교황의 태도가 엿보였다.
바오로 6세 홀은 이날 좌석 6,300석이 거의 가득 찼고, 그 분위기는 기자회견장을 넘어 하나의 ‘현장 메시지’가 되어 퍼져나갔다. 하지만 일부 언론인은 이러한 열기를 경계했다.
이탈리아 언론인 노베르토 가이타노는 “우리는 교황의 팬클럽이 아니다”라며 “그가 레오 14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 베드로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그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미소를 잃지 않고 홀을 떠나며 마지막까지 손을 흔들었다. 세계의 눈과 귀가 향한 자리에서 그는 화려함보다 책임을, 권위보다 약자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그 첫 걸음이 전한 울림은 단지 종교계를 넘어, 세상 전체의 소통 방식에 대한 성찰로 확산되고 있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