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베르나노스는 『달 아래의 위대한 묘지들』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기독교가 유럽을 만들었다. 기독교는 죽었다. 유럽도 죽을 것이다. 이보다 간단한 일이 있을까?”
그로부터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 베르나노스의 쓰라린 예언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다시 유럽에서 소수 종교가 되어가고 있고, 텅 빈 교회들은 신도들로 넘쳐나는 무슬림 공동체의 모스크를 대신할 공간으로 비쳐지고 있습니다.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럽에 대한 냉소를 자신의 통치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무슬림 이민에 대한 무관심은 교회의 미래 신도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유럽은 더 이상 기독교 대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2천 년 동안 우리가 알던 유럽은 종말을 맞이할 것입니다. 유럽은 이슬람화될 것이며, 기독교 소수자가 살아남은 유럽 칼리프국에서 최대한 관대한 ‘디미(비무슬림 보호민)’의 지위를 협상하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와 유럽의 역사적 결합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이 옛 신들을 버리고 하느님의 아들을 숭배하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습니다. 기독교는 본래 유대교의 딸로서 동방의 종교였습니다. 일련의 특별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을 거쳐, 유럽은 기독교화되었고 기독교는 유럽화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와의 관계에서 영원히 그 그림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자신의 어머니를 동시에 경외하면서도 혐오하는 딸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모방하면서 그것이 원래 있었던 모델과 닮아갈수록 그 대상을 미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대교와의 결정적 차이를 가집니다. 바로 구원이 오직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게서 온다는 혁명적 개념입니다. 율법보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바울의 선언은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벗어나 로마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게 했습니다.
유대교는 하느님의 율법이 모세에게 계시되어 민족 전체에 적용되는 종교입니다. 유대 역사의 독특함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따라 자기 민족을 끝없이 꾸짖고 타락한 제사를 비웃은 예언자들의 존재에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이 요구하신 정의로운 삶을 회복하라고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이 위대한 유대 예언자 계열의 정점에 선 인물입니다. 이 역사적·철학적 계열은 에른스트 르낭이 ‘유대-기독교’라고 부른 것의 기초입니다. 이것은 천천히 그러나 거스를 수 없는 과정을 거쳐, 사회적·정치적 예배를 개인 윤리로 변화시켰습니다. 민족의 하느님은 인류의 하느님이 되었고, 도시의 외적 규범이 개인의 내면적 신앙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격동 속에서 예언자들은 종종 박해와 살해를 당했습니다. 예수 역시 이 운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운명을 공유했지만, 그의 지리적 영향력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멈추지 않았고,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로마 군단, 도로, 도시, 그리고 팍스 로마나는 이 유대 분파가 기독교라는 종교로 성장하는 데 강력한 촉매가 되었습니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