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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청년대회(WYD)의 상징인 나무 십자가 - 인터넷 캡쳐 |
나는 종종 친구들조차 “기독교 신앙의 부흥 없이는 유럽의 개인주의는 결국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기독교 재복음화(re-Christianization)의 주제는 프랑스 대혁명 이래 유럽 전역, 특히 프랑스에서 끝없는 논쟁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이 글은 ‘진보의 힘’과 ‘반동주의자들’ 간의 이 고통스러운 투쟁의 역사를 다시 들추는 자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프랑스를 자세히 살펴보면, 1815년, 1871년, 1940년의 군사적 패배 이후에 대중적인 기독교 재활성화의 물결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교회는 다시 신자들로 채워졌고, 주요 작가들은 자신들의 가톨릭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으며, 국가는 학교와 대학에서 교회를 지원했습니다.
오늘날 서구의 오래된 기독교 국가들 역시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전통 라틴 미사는 성황을 이루고 있고, 복음주의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경건하고 축제적인 예배로 회귀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 미셸 우엘벡은 안락사 합법화에 반대하며 자신의 신앙 여정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세계청년대회(WYD)는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있고, 회피하던 세례를 받기 위해 젊은 남성들이 다시 교회를 찾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는 여성주의와 LGBTQ 운동에 대응하는 ‘대안 사회(counter-society)’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이 강풍에 꺼질지, 불길로 확산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서구 기독교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기독교를 다른 종교들과 구별짓는 핵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독창성은 율법을 넘어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있습니다.
이 개인과 내면성의 기독교 혁명은 초기 전파기에 찬란한 영광을 누리게 했지만, 오늘날 그 중심 교리가 사회 전체에서 외면받는다면 그만큼 취약해지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무엇보다도 ‘민족’이며, 이슬람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구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기독교를 위한 투쟁은 단순히 신앙만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기독교 문명이 남긴 건축, 예술, 문화, 법, 정치적 유산—즉 ‘공공의 선’을 ‘공공’이고 ‘선한’ 것으로 유지하는 이 모든 것을 방어하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21세기는 문명 간 충돌의 시대입니다. 이 싸움에서, 문명은 자신이 근본적으로 ‘종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질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 잊고 자신을 지탱한 종교를 방기하는 문명은 멸망하게 됩니다.
공산주의도, 나치즘도 막대한 자원을 동원했지만 기독교를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종말이 임박한 것이 아니라면, 이슬람 역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럽도 무함마드의 그림자라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유럽이 자신답게 남는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유럽이 자신을 되찾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독교뿐입니다. 왜냐하면 유럽은 기독교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끝>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