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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너 출애굽 하는 모습 - 인터넷 캡쳐 |
구세계의 이방인들은 신들로 가득 찼던 선사 시대의 세계, 즉 기독교가 도래하기 이전 인간 존재의 변함없는 동일성을 기억한다. 유럽 문화의 선사 시대는 고유한 시간의 척도를 지니지 않았으며, 연대기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원형(archetype)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의 시간은 동화 속 ‘옛날 옛적에’라는 말과 같은 시간이다.
구세계의 민족들은 기독교 이전의 시기, 즉 이교도 신들로 가득한 세계를 떠올린다. 이 세계는 원형은 있지만 개별적 인물은 없다. 구세계 문화는 과거에 고정되어 있으며, 그들의 시간은 전설 속에서 흐르는 ‘옛날 옛적에’의 미분화된 시간이다. 하루, 1년, 혹은 평생이라는 시간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여행자가 마법에 걸린 성을 지나 연회에 참여하지만, 그곳에서의 7일은 실제로는 7년이었다는 식이다.
현대 세계에 들어서면서 시간 자체가 변화한다. 미국 최초의 주목할 만한 작가 워싱턴 어빙은 고대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미국 공화국의 ‘새로운 시대의 질서(novus ordo seclorum)’를 구현했다. 리프 밴 윙클은 시간의 구분이 없는 전설 속 구세계에서 잠이 들고, 혁명의 미국이라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깨어난다. 기독교 이전 시대의 미분화된 ‘옛날 옛적에’는 새로운 빛 속에서 녹아 사라진다.
어빙의 기발한 설정은 유대교 전통에서도 분명한 전례를 찾을 수 있다. 조셉 솔로베이치크는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받은 첫 번째 계명은 시간을 세는 것이었고, 이는 해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출애굽기 12:1).” 오직 자유로운 사람만이 미래를 계획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기독교 개종과 미국 시민화는 밀접한 유사성을 가진다. 이민자들을 동화시키는 일은 미국의 국가적 천재성이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누군가 시민권을 얻으면 ‘그는 독일 여권을 가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귀화 선서를 한 독일인은 그 순간부터 다른 미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진짜 미국인’이다. 미국이 단지 하나의 사상적 제안만을 담고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세속적인 틀 속에서 영적인 열망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국가이며, 그 영적 목표가 실현된 상태는 아니다. 실현될 수도 없다. 그것은 끝날 수 없는 여정이며, 허클베리 핀처럼 다시 시작될 뿐이다.
민족성을 신성시하는 일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로젠츠바이크는 이렇게 썼다. “각 민족이 자기 민족성을 사랑하는 감정은 달콤하지만 죽음의 예감을 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강과 산이 여전히 하늘 아래 펼쳐져 있지만, 그 땅에 다른 민족이 살고 있고, 자신들의 언어는 책 속에 묻혀 있으며, 법과 관습은 생명력을 잃은 채 사라진 미래를 예감한다.”
그래서 구세계의 비극적 영웅들 -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에서 햄릿과 발렌슈타인에 이르기까지 - 은 그들의 민족이 맞이할 비극적 운명을 연기하는 존재다. 미국인은 그런 비극적 결말을 기다리기보다 ‘새로운 세계로 떠난다(lights out for the territory).’ 이것이 미국인이 문학 장르로서의 비극을 결코 완전히 체득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장 자의식 강한 비극 작가인 유진 오닐조차도 그의 작품들에서 비극을 지향하면서도 상황극(situation comedy)의 구조를 배반한다. 『밤으로의 긴 여정』은 야구공이 깨뜨린 창문 대신 중독과 결핵이 등장하는 『비버 가족』이고, 『아이크스맨이 온다』는 살인과 자살을 곁들인 『치어스(Cheers)』에 가깝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