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문 진압 거부 장세군의 증언록, “나는 역사에 증언 남긴다”
  • -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의 반성, 30년간의 고난과 도덕적 사명의 기록
  • 북경 천안문 광장 앞에 선 장세군  독자 제공
    북경 천안문 광장 앞에 선 장세군(張世軍) - 독자 제공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6·4 민주화 시위’는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아직도 그 진상과 책임 규명이 봉인된 사건이다.

    그 현장의 한복판에서 국가 명령을 수행했던 병사 장세군(張世軍)의 이야기는 이 역사적 비극의 또 다른 이면을 비추고 있다.

    장세군은 당시 중국인민해방군 제54집단군 162사단 소속 병사로, 계엄군으로 투입되어 천안문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군인이 학생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 충격적인 경험 이후 장세군은 조기 전역을 신청했으나 오히려 “계엄 명령 불이행”과 “자산계급 자유화 사상 보유”라는 이유로 군에서 제명당했다.

    이후 그의 삶은 끊임없는 박해와 고난의 연속이었다. 1992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그는 ‘반당 반사회주의’ 혐의로 체포되어 3년간 노동 교양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도 그는 사회 최하층을 전전하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했다. 생계를 이어갈 최소한의 직업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최근에는 건강 악화로 의료비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0년부터 그의 삶을 꾸준히 추적하며 기록해왔다. 그의 의료보험은 끊겼고, 정부의 형식적인 저소득 의료 보조는 사실상 지방 정부의 행정망을 통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의 지인이 전한 바에 따르면, 퇴원 당시 하루 20위안 정도였던 약값도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머리가 희끗해진 장세군은 생애 마지막을 향해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기고 있다. “나는 이 편지 역사를 남길 것이며, 이것은 나의 도의적 책임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6·4를 둘러싼 중국의 국가 폭력과 침묵 강요의 시대에 맞선 하나의 ‘증언’이자 ‘윤리적 저항’이다.

    그는 말한다. “중국인이 자유와 민주, 진보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큽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장세군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고난기가 아니다. 그것은 중공 체제가 ‘양심의 목소리’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며, 중국 현대사에 남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의 기록이다.

    그의 증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가?

    장·춘 <취재기자>
  • 글쓴날 : [25-05-30 11:19]
    • 장춘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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