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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다원주의를 표현한 상징물 - 인터넷 캡쳐 |
미국인인 우리는 단일한 민족성을 지니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특정한 결함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다른 위험에 취약하다. 우리는 천상의 도시(Heavenly City)를 세속적인 현실과 혼동하고, 구세주적 착각에 빠져 세상을 우리 모습대로 재창조하려 한다.
자연법과 자연권은 미국 정치 체계의 영혼이 아니라, 모든 신앙의 추종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최소 공통분모에 불과하다. 미국 정치의 '로크적' 요소는 기반이 아니라 배관 시스템일 뿐이다.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드는 것은 매디슨 헌법의 기계장치가 아니라, 체스터튼(G.K. Chesterton)이 지적했듯 '교회의 영혼을 지닌 국가'라는 점이다. 물론 특정한 교회가 아니라, 원근법의 소실점 너머에서 우리를 부르는 천상의 도시 속 교회인 것이다.
미국의 다원주의는 가톨릭과 유대인에게는 큰 축복이었다. 영국식 국교 모델이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은 1829년까지, 유대인은 1858년까지 영국 의회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다.
켄터벙크포트(Kennebunkport)를 찾는 관광객에게 "여기서는 거기 못 가요(You can’t get there from here)"라고 말한 메인 주 농부에 대한 농담이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천상의 도시로 가는 길이 없다. 우리는 성급함과 짜증 속에서 시민 사회의 작동 원리와 천상의 도시의 계획을 혼동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국민성의 고질적인 약점, 우리 민족정신(Volksgeist)의 본질적인 결함이다. 그러나 이는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할 일은 아니다. 개인의 결함이 스스로 인식될 때 감당 가능하듯, 우리의 국가적 약점도 그것을 이해한다면 해로울 것이 없다.
유대인의 관점을 다룰 때는 유대인 농담 없이는 완성되지 않으므로, 오래된 유대인 농담 하나를 소개한다. 옛 고향의 랍비가 상업 분쟁을 심리한다. 원고의 말을 듣고 "당신 말이 맞소!"라고 말한다. 피고가 반발하며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자 랍비는 "당신도 맞소!"라고 한다. 이를 듣고 있던 랍비의 아내가 항의한다. "둘 다 맞을 순 없잖아요!" 그러자 랍비는 말한다. "당신 말도 맞소!"
헤겔은 『법철학』에서 다음과 같은 변증법적 구도를 제시했다. '존재(Being)'는 가족과 전통 속에서, '이성(Rationality)'은 시민사회의 자유 시장에서, '이성적 이념(Reason)'은 국가에서 구현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대교 철학자 요셉 솔로베이치크(Joseph Soloveitchik)는 다음과 같은 반박을 내놓았다.
“유대교의 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과 달리 화해되지 않으며, 따라서 끝나지 않는다. 유대교는 정립(thesis)과 반정립(antithesis)만을 받아들인다. 헤겔의 세 번째 단계인 종합(synthesis, 화해)은 결여되어 있다. 갈등은 궁극적이며 거의 절대적이다. 화해는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으며, 인간은 할 수 없다. 완전한 화해는 종말론적 비전에 속한다.”
유대인의 관점이 미국인에게 줄 수 있는 통찰은 이렇다. 패트릭 디닌(Patrick Deneen)도 옳고, 대니얼 마호니(Daniel Mahoney)도 옳다. 매디슨식 자유주의자도 옳고, 종교 통합주의자도 옳다. 우리는 미국 정치 체계의 어떤 형태로도 지상도시와 천상도시 사이의 종말론적 간극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을 본받는 삶(imitatio Dei)’을 통해, 천상의 비전을 지상에서 구현하려는 도시를 세울 수 있으며, 그 모순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