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4] 교부학(Patristics 敎父學)의 부흥
  • 스티븐 O. 프레슬리 Stephen O. Presley is the author of Biblical Theology in the Life of the Early Church and senior fellow for religion and public life at the Center for Religion, Culture, and Democracy.

  • 1990년 5월 25일, 저명한 교부학자 찰스 칸넨기저(Charles Kannengiesser) S.J.는 북미 교부학회(North American Patristics Society) 연례 학술대회에서 ‘교부학의 미래(The Future of Patristics)’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 학회는 고대 기독교 연구자들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모임이다. 칸넨기저의 강연은 학계의 ‘국정 연설’과도 같았으며, 20세기 동안 급격히 확장된 초대 교회 연구를 “교부학의 부흥(patristic revival)”이라 규정했다. 그는 이를 9세기 카롤루스 르네상스, 17세기 얀세니스트·베네딕트회 부흥에 비견하며, 한때 우리를 하나로 묶은 종교적 유산과 다시 연결되고자 하는 깊은 문화적 갈망을 보여 준다고 진단했다. 20세기는 의식하든 못하든 ‘ad fontes(원천으로)’ 운동이 전방위로 전개된 시대였다.

    ‘부흥’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20세기와 21세기 교부학 부흥의 동력은, 칸넨기저가 “유럽의 토대에 대한 해석학(hermeneutic of European foundations)”이라 부른 무언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기술 혁명, 사회적 격변으로 전통적 제도는 벼랑 끝에 몰렸고, 문화적 중력이 고대 교회로 향했다. 그 영향은 고전교육 운동이나 미국 대학가에 우후죽순 생겨나는 ‘시민 센터(civics center)’ 같은 실천적 흐름에서도 나타난다. 칸넨기저는 이를 “근대 이후의 기독교 삶이 그 너머를 향해 움직이는 광범위한 전환의 한 에피소드”로 보았다.

    예언적이던 그의 진단은 교단 신자 수가 서서히 증발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반전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종교 공동체와 제도는 꾸준히 쇠락했다. 주류 교단의 하락과 복음주의의 파편화가 연이어 출판물로 기록되는 가운데, 모든 주요 종교개혁 계열 교단은 대규모 균열과 숫자 감소로 몸살을 앓는다. 복음주의 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TEDS)이 문을 닫고 캐나다로 이전한다는 소식은 20세기의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교조차 독립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고대 교회로의 회귀’는 무엇을 남길까? 현대 부흥의 주요 특징은 성경으로의 회귀다. 논쟁은 주로 해석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졌으나, 교부들에게 근본적 질문은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아니라 “왜 성경을 읽는가”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교 문화권 밖, 이교적 환경에서 살았기에 성경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현실임을 입증해야 했다. 그들은 성경이라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누렸다.

    교부들에게 성경은 문화를 형성하는 텍스트였다. 성경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속에서 번영하는 공동체의 규범이 되었다. 고대 교회의 기독교가 혁명적으로 성장한 비결은 바로 이 성경이었다. 현대 비평학은 성경을 과도하게 해부해 칸넨기저가 말한 “오늘날의 과학적 주해”와 “교회 속 실제 사람들” 사이에 깊은 간극을 만들었고, 기술적 도전이 이 간극을 더 벌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복음주의와 교부학 두 세계를 오가며, 나는 성경이 노스럽 프라이가 말한 서구 문명의 ‘위대한 코드’임을 깨달았다. 칸넨기저도 “성경은 서구 전통의 대체 불가능한 핵심석”이라고 했다. 초기 교회를 돌아보면 성경이 문화와 공동체의 비전을 창조해 인간 번영을 촉진한 것이 분명하다. 말씀은 신자들의 삶에 스며들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었다. 톰 홀랜드의 『도미니언(Dominion)』만 훑어봐도 교회가 서구를 얼마나 형성했는지 알 수 있다.

    예언자와 사도를 통합해 읽으며 교부들은 하느님·세계·인간이 함께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y)’을 그려냈다. 그들은 성경이 제시한 삶의 비전에 순응해야 참된 인간 번영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고 타인을 그 여정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마이클 레가스피가 ‘학문적 성경’이라 부른 것에 집착해 ‘경전적 성경(scriptural Bible)’을 소홀히 했다. 비평 방법이 성경을 해부하며 생기 넘치는 전체적 비전을 잃게 했다. 우리는 성경적 신학의 통합적 시선이 다시 필요하다.

    하느님의 백성이 성경을 중심으로 모일 때 그들은 공동 고백, 공동 형이상학, 그리고 말씀을 실천하는 영적·예전적 삶의 패턴을 공유한다. R. R. 리노는 『해석의 종말(The End of Interpretation)』에서 “교회는 우리가 성경을 잘 읽도록 훈련한다”고 말한다. 교리교육·예전·설교를 통해 신자들은 세상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며, 문화적 제도를 덕스럽게 형성한다.

    이것이 교부학 부흥이 궁극적으로 이뤄 내길 바라는 바다. 부흥이 우리를 다시 성경으로 이끌 때, 거기에서 우리는 다가올 하느님 나라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6-04 07:56]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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