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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프라치스코 교황 성하 모습 |
* 이 글은 제이드 핸릭스 대표가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재임하고 있던 2023년에 쓴 글입 니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한국 가톨릭교회에 전하는 큰 울림이 있기에 소개합니다.
작년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미국 가톨릭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정중히 지적하는 글을 썼다. 틀렸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글은 여전히 유효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Vatican II)와의 관계에서 미국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미국 주재 교황대사이자 교황의 외교 사절인 크리스토프 피에르(Christophe Pierre) 추기경의 인터뷰는 교황의 오해를 어느 정도 드러낸다.
아메리카 매거진(America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피에르 추기경은 “미국에는 교황을 희생양 삼아 교회나 사회의 모든 실패를 떠넘기려 하는 사제·수도자·주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교회는 ‘시대가 전환되는 시점’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제들 다수는 수단을 입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형식으로 미사를 드리는 꿈을 꾼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초반에 그는 남미 교회의 경험, 특히 교회의 새 복음화 방식을 제시한 ‘아파레시다(Aparecida) 문헌’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초안 위원회 의장이었던) 베르골료 추기경(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니라 성령께서 만들어 내신 것”이라며, 남미와 멕시코 주교들이 “함께 일하고 해법을 모색해 더 나은 복음화를 이뤄 냈다. 이것이 바로 시노드(시노달리타스)의 전부다. 더 나은 복음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주교들은 이러한 놀라운 발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암시하며, 미국 교회가 멕시코·남미보다 선교적 열정이 부족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추기경은 이어 “미국에서는 이제 거의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는다… 그래서 교황이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교회 안에 머문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미국 교회의 이민자 환대 방식을 깎아내리며 “그들이 문을 두드려도 거절당한다. 미국은 더 이상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미사만 제공하고 끝인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이들이 ‘멕시코적 가톨릭’에서 ‘미국적 가톨릭’으로 전환하도록 돕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어 미국 교회가 폐쇄적이며 교황에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교회가 피난처인가? 피난처로 본다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적이다. 서로 기분 좋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또 “미국 언론은 동성애나 사제 독신 폐지 등 ‘교리가 갈린다’는 식으로만 보도해 모호성을 키운다. 일곱 해 동안 미국 주교들에게 계속 그렇게 말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교들이 자신들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질타하며 “행정 회의만 하지 말라. 서로의 말을 듣고, 현실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식별·결정하라”고 권고했다. 끝으로 교황에 대해 “성령께서 이 시대를 위해 원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먼저, ‘변두리로 나가라’는 교회의 요청에 따라, 나는 교적 장부 속 평범한 신자 중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한다. 나는 미국 내 여덟 개 주에서 살았고, 거의 모든 주를 다녀 보았으며, 수십 년간 제도권 교회 안팎에서 일했다. 전통주의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고, 신학 석사 학위를 지녔으며, 현대 문화와도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피에르 추기경이 말한 대로 교황을 ‘희생양’ 삼는 주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는 주교를 나는 한 명도 모른다. 우리가 직면한 문화적 위기는 교황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를 주교들이 교황 탓으로 돌린다는 주장은 부당하다. 주교들에게 바티칸 대표 사절의 이런 인식이 얼마나 낙담스러울지 생각해 보라.
젊은 사제 대부분이 ‘수단 열광자’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극히 일부 예외일 뿐이다. 아동 성 학대 사제 보호라는 성직주의 문제나 교회 재원을 고갈시키는 대형 회의 등 훨씬 시급한 사안이 있는데, 왜 수단에 집착하는가?
‘미국 교회에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말 역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교세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나, 전국에는 성장하는 활기찬 본당이 많다. 워싱턴 대교구와 알링턴 교구만 봐도 그렇다. 추기경께서 회의 참석을 줄이고 본당 순례를 늘리신다면 좋은 본보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내가 익명으로 동행하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과 남미, 특히 프랑스·아르헨티나·독일에서는 성당이 비어 가고 있다. 아파레시다(2007) 이후 남미 사제 수가 급격히 줄어 지금도 감소 추세다. 남미 교회가 미국 교회보다 선교·사목 지표에서 훨씬 뒤처져 있다는 통계도 많다. 그렇다면 아파레시다와 시노달리타스가 진정한 해법이라 할 수 있는가? 설명이 필요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지난 20년간 성소(聖召)가 꾸준히 증가했다. 국제 가톨릭 대학생 사도직(FOCUS), ‘크라이스트 인 더 시티(Christ in the City)’, 크레아티오(Creatio) 등 다른 나라에 없는 복음화 사도직이 자리 잡았고, 덴버 대교구만 해도 이와 유사한 단체가 열 곳은 더 된다. 소규모 가톨릭 대학과 대학교가 학생들을 신앙 안에서 양성하고, 국공립 캠퍼스에도 활기찬 가톨릭 학생 센터가 있다.
주교들은 신학교를 대대적으로 쇄신해 한때 만연했던 신학·도덕적 일탈을 정리했다. 교회는 수억 달러 규모의 민간 기부와 수많은 숨은 성인(聖人)들의 헌신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돌보고 있다. 공교육을 대신할 가톨릭 학교도 활발히 운영되며, 가톨릭 출판·미디어는 세계 어느 곳보다 풍성하다. 미국 교회가 이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피에르 추기경이 묘사한 황폐하고 죽어 가는 곳은 아니다.
이민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보다 관대한 나라는 드물다. 우리 사회와 교회는 난민·이주민(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모두에게 문을 열어 왔다. 주요 도시는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있고, 가톨릭 성당들은 모두를 환영한다. 주교단은 대규모 이민·난민 서비스 기관을 직접 운영하거나 협력한다. 이는 칭찬받아 마땅하지, 폄하될 일이 아니다.
미국 주교들이 ‘성 문제’에 집착한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시노달리타스의 일부 지도부와 교황 임명 대의원들이 동성애·혼인·사제직 문제를 집중 거론한다. 미국 주교회의(USCCB)의 최우선 과제는 ‘성체성사 쇄신(Eucharistic Revival)’이다. 이는 가톨릭 신앙의 심장부로 신자들을 이끌려는 노력이지, 성(性)에 대한 집착이 아니다.
많은 주교들은 제임스 마틴 신부 등 일부 인사들이 ‘용감한’ 대화를 표방하며 동성애 의제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지쳐 있다. 교구별 시노드 보고서를 보면, 본당 현장에서 성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음에도, 상위 문건에서 과도하게 부풀려졌다. 이를 통해 교리에 어긋나는 주장을 관철하려 하고, 그 탓을 미국 주교들에게 돌리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끝으로, 교황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곧 성령의 뜻이라는 식의 ‘극단적 울트라마운테니즘’은 위험하다. 교회 역사도 이를 부정한다. 시노달리타스가 강조하는 식별(discernment)은 성령께서 어디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분별하는 작업이다. 이는 교황, 주교, 평신도를 모두 포함한다.
이 글을 쓰며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추기경의 발언은 반박 없이 넘어갈 수 없다. 이는 미국 주교단, 수도자·사제들, 그리고 신앙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무수한 평신도들에 대한 정의(正義)의 문제다. 성령께서 그들과 모든 신자들과 함께하시고, 바티칸이 미국 교회의 실제 모습을 올바로 보게 되길 기도한다.
- 제이드 헨릭스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쇄신을 위한 가톨릭 연대’ 대표입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