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6] 마틴 주교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 제이드 헨릭스 Jayd Henricks is the president of Catholic Laity and Clergy for Renewal. (‘평신도와 성직자의 쇄신을 위한 가톨릭 연대’ 대표)

  • 샬럿 교구의 마이클 마틴 주교가 라틴어, 제대 난간, 심지어 ‘성 미카엘 기도문’까지 포함한 전통 전례 관행에 대해 광범위한 제한을 담은 지침 초안을 작성했을 때, 이는 단순한 지역 교회 논란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이는 한 주교의 주교령과 평신도들이 몸소 지닌 유기적 가톨릭 감수성 간에 벌어지는 보다 큰 교회 내 갈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신자들의 반응은 크고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이었다. 형식상 지역 교회법 문제이기에 다른 주교들은 조용히 있었지만, 평신도들은 일종의 ‘시노달리타스’(공동합의성)를 발휘해, 사실상 의무사항처럼 보이는 이 지침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전통 성향(맹목적으로 순종하는)의 가톨릭 신자들을 반대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창이기도 하다.

    이 같은 논쟁에서 ‘탄광 속 카나리아(The canary in the coal 문제, 위험 또는 실패의 경고 신호)’ 역할을 하는 것은 전통 라틴 미사(TLM)에 대한 태도다. 데이터를 보면, 미국 가톨릭 신자들은 TLM 억제를 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TLM 신자들의 선호조차 잘 알지 못한다. 오히려 지배적인 태도는 ‘서로 각자 살게 두자’는 것이다.

    사회학자 스티븐 불리번트와 스티븐 크래니가 집필 중인 책 준비 과정에서 실시한 전국 조사(가톨릭 평신도‧성직자 쇄신연대 후원) 결과, ‘문화적’, ‘진보적’, ‘보수적’, ‘전통적’ 등 다양한 가톨릭 그룹에 대한 호감을 묻자 부정적 반응은 극히 미미했다. 라틴 미사 참석자를 포함해 어느 그룹도 20% 이상 ‘부적격’을 받지 않았다.

    전통 라틴 미사 제한에 대한 구체적 태도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잘 모르겠다”를 선택하지 않은 응답자 가운데 69%는 “TLM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에 동의했고, 10%만이 반대했다. 76%는 “원하는 사람은 TLM에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에 동의했으며, 반대는 7%에 불과했다. “TLM 참석자는 교회에 해롭다”는 문장에 어느 정도라도 동의한 비율은 21%였다.

    활동성이 높은 신자일수록 TLM 허용에 더 우호적이었다. 월 2회 이상 미사에 참석하는 규칙적 신자들은 덜 활동적인 신자보다 TLM 허용을 더 지지했다. 또한 흔히 ‘전례적으로 진보적’일 것이라 여겨지는 젊은 신자들은 오히려 라틴 미사 참석자가 ‘해롭다’고 볼 가능성이 더 낮았다.

    이 숫자는 소수 파벌의 지표가 아니라, 신앙의 다양한 표현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주류적 합의’를 보여준다. 평균적인 가톨릭 신자는 라틴 미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지라도 이를 억압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일부 주교들만 다르게 느낄 뿐이며, 진정한 불협화음은 그 지점에 있다.

    평신도들의 정서는 ‘전쟁 중인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다양성을 위협이 아닌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인 성숙한 공동체의 태도다. 라틴 미사를 제한하는 주교들은 민심을 따르기보다 거스르고 있다.

    샬럿 사태는 전통 전례를 제한하려는 소수 주교들에게 특히 난처한 시기에 터졌다. 레오 14세 교황은 선임 교황과 달리 전통적 제의복과 라틴 성가를 적극 수용하며 최소한 전례 전통에 더 포용적인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서거 전에 초안된 마틴 주교의 규범은 마치 다른 교황 시대의 유물처럼 보인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상황에서, 패션이 바뀌었음을 모르고 남은 마지막 인물처럼 비친다.

    그러나 더 깊은 문제는 교황정치(papal politics)가 아니라 ‘사목적 판단’이다. 조사 자료는 평범한 신자들이 주교들이 이루지 못한 일을 이미 이뤘음을 보여준다. 즉, 전통과 쇄신 사이에서 일방적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실용적 종합’을 일구어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보스 오르도(현행 미사)와 TLM, 혁신과 전통, 사목적 적응과 전례적 연속성을 함께 소중히 여길 수 있다.

    이런 종합은 본당 수준에서 교구청보다 훨씬 탄탄한 ‘가톨릭 상식’이다. 대부분의 신자는 교회가 하나의 신앙 안에서 다양한 전례 표현을 품을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이해한다. 강압적 제한은 오히려 막으려던 분열을 자초한다는 것도 안다.

    라틴 미사에 대한 일부 주교들의 ‘전쟁’은 평범한 본당의 전통 요소까지 겨냥하며 ‘문제 없는 곳에 해답 찾기’처럼 보인다. 이는 전통주의에 대한 엘리트층의 불안이 주동력이지, 전례 남용에 대한 풀뿌리 불만이 아니다. ‘수용’을 ‘항복’으로, 사목적 유연성을 ‘교리적 타협’으로 간주한다.

    마틴 주교는 다행히 해당 지침이 ‘검토중’임을 밝혔다. 그는 충실한 신자들을 소외시키며 뚜렷한 사목적 필요도 충족시키지 못할 제약을 재고할 시간이 있다. 더 넓게 보면, 전통 전례에 거친 제한을 시행하는 주교들은 과연 신자들을 섬기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념적 선호를 섬기는지 자문해야 한다.

    결국 샬럿 논란은 미국 가톨릭교회의 고무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일부 목자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전례 전쟁’을 평신도들은 이미 넘어섰다. 새 전례와 오래된 전례 모두에 자리를 내주는 성숙한 다원주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일치(統一)를 위해 일색(一色)이 필요치 않다’는 가톨릭적 시각이며, 주교들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TLM이 비판에서 자유롭다는 말은 아니다. 그 어떤 가톨릭 관행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넓은 평신도 지지, 세대 간 호소력, 풍성한 영적 열매를 보여주는 자료에도 불구하고 주교들이 이를 억압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제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강우일 전 제주교구장이 행했던 '십자가의 길' 15처에 대해 순종했던 한국 평신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칼럼입니다.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교회'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6-06 06:59]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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