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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러시를 이루고 있는 차량 행렬 |
이스라엘의 공습이 사흘째 지속되며 이란 수도 테헤란에 전쟁의 공포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시민들이 집을 떠나 북부 시골로 대피하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민간 거주지역까지 무차별적인 폭격 대상이 되면서, 수도권 시민들 사이에서는 “우리 옆집이 군 지휘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번 공습은 군사시설에 국한되지 않고 중산층 주택가까지 겨냥되면서 테헤란 도심 전체가 ‘사실상의 전장’으로 전락했다.
이란 정부는 방공호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시내 지하철역을 24시간 대피소로 개방하고, 일부 학교와 모스크도 임시 거처로 전환했다. 그러나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은 대거 수도를 탈출하고 있다.
테헤란 시의회 메흐미 차므란 의장은 “지하실로 대피하는 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며 “지하철역도 피난처로 활용되지만, 이를 위해선 지하철 운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도심의 일부 식료품점은 아직 재고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주유소와 현금인출기에는 제한 조치가 내려졌다. 휘발유는 1인당 25리터까지로 제한됐고, 일부 ATM은 인출 한도를 조정한 상태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공습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공포가 번지며 야간 통행이 급감하고 상점들도 속속 문을 닫는 등 테헤란 시내는 침묵에 휩싸이고 있다.
북부 카스피해 연안의 시골 마을로 이동하려는 시민들로 인해 주요 교외도로에는 대규모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어린 자녀와 노부모를 대동해 탈출을 준비 중인 한 남성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군 지휘관들이 도심 주거지역에 거주하게 만든 정부의 전략이 민간인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을 이런 곳에 남겨둘 수는 없다”며, 미국이 개입해 양국 간 무력 충돌을 중단시켜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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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테헤란 시내 |
이 같은 대규모 탈출과 함께 시민들의 분노는 이스라엘을 향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억압적인 정권에 맞서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공습을 정당화한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28세 여성 네다는 “지금 정권이 싫다고 해서, 외국의 폭격으로 내 도시가 불타는 걸 원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시설과 군사 기지만을 타격했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민간인과 주거지를 겨냥한 공격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잔혹한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란 중부 도시 시라즈에서도 사재기와 시골로의 대규모 이주가 관찰되는 등, 전쟁 공포는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란 내부에서 정권에 대한 반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폭격은 오히려 국민적 결속을 자극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번 공습이 단기간에 종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테헤란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이탈’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