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29] 전쟁을 끝내는 도덕적 논리
  • R. R. 리노 Reno is editor of First Things. 편집장

  • 전쟁은 좀처럼 만족스러운 각본대로 끝나지 않는다. 1945년의 ‘무조건 항복’ 같은 장면은 역사적으로 드문 예외일 뿐이다. 대부분의 전쟁은 휴전, 정전 협정, 마지못한 외교적 타협 같은 회색지대에서 막을 내린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로 그 회색지대에 서 있다.

    이란과 그 하부조직(대리세력)을 상대로 한 방어적 작전은 전장에서의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란은 패배했다. 그러나 이 승리를 지속 가능한 평화로 전환하는 것이 더 어려운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면서 ‘조지 W. 부시 2.0’―무력에 의한 체제 전복이라는 거창한 환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란은 단순한 경쟁국이 아니다. 수십 년간 이슬람 공화국은 경제 개발은 물론 내부 안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유대 국가(이스라엘)의 파괴라는 혁명적 야망을 추구해왔다. 테헤란은 병원을 짓거나 도로를 포장하는 대신 우라늄 농축과 테러 조직에 자원을 쏟아부었다. 그 선택은 이후의 모든 흐름을 결정지었다.

    2023년 10월 7일의 참혹한 공격과 그 이후의 일련의 사태는, 명백한 적과의 화해가 치명적인 자기기만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란의 대리세력인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심스러운 외교 시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고, 테헤란에 유리한 새로운 지역 질서를 강요하려 했다.

    하지만 2024년 가을, 거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이스라엘군의 작전은 헤즈볼라의 10만 발 이상의 로켓 무기고를 놀라울 정도로 신속히 무력화시켰다. 이어진 시리아 붕괴는 또 하나의 이란 대리세력을 제거했고, 이란 본토 중심부로 향하는 항공로를 열었다. 정밀타격은 이란 군 지도부의 핵심을 꿰뚫었고, 전쟁의 ‘물리적 단계’는 분명한 조건 아래 막을 내리고 있다. 이란의 재래식 전력은 초토화되었고, 대리세력은 혼란에 빠졌으며, 남은 핵시설은 무방비 상태다.

    이런 시점에서는 정치적 상상력이 과열되기 쉽다. 어떤 이들은 테헤란 진군을 주장하며, 독재자의 동상이 무너지는 순간이 평화로운 중동의 시작이라 상상한다. 그러나 그러한 유혹은 반드시 억제해야 한다. 조지 W. 부시의 체제 전복 모험주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졌듯, 피로와 역풍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스라엘의 전쟁 목적은 어디까지나 방어적이다. 가상의 위협이 아닌 실질적 위협에 대응하고,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대리세력을 계속 무장시키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유대 국가는 이 방어 목표 달성에 거의 다다랐다.

    정당한 전쟁 전통은 전쟁의 시작뿐 아니라 마무리에서도 신중함(prudence)을 요구한다. 내 판단으로는, 공식적인 조약이든 암묵적인 상호 합의든 간에, 정착점에는 다음 세 가지 조건이 포함되어야 한다:

    1. 핵무기 개발 차단 - 원심분리기를 비활성화하고, 철저한 사찰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2. 탄도미사일 확장 금지 - 투발 수단은 핵탄두와 뗄 수 없는 관계다.
    3. 대리세력의 재무장 금지 -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과거의 껍데기로만 남아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은 과도한 요구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안보, 더 나아가 지역 평화를 위한 토대다. 이 평화는 중동 전역에서 환영받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못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현 가능하다.

    문제는 이란 신정 체제가 혁명적 야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모든 절충안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원하는 “합의”는 실질적으로는 합의가 아닌, 전장 위 현실이 강제한 질서일 수 있다. 그럼에도 외교는 공습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불안한 아랍 국가들을 안심시키고, 새로운 동맹 구조를 제도화하며, 이란이 다시 공격을 감행하기엔 너무 큰 대가를 치르도록 ‘레드라인’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이번 성취는 현실이며, 어쩌면 경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의 다가오는 승리는―신의 섭리가 허락한다면―새로운 도덕적 부담을 국가 지도자들에게 안길 것이다. 예루살렘은 자제를 보여야 한다. 오늘의 승리가 오만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신중한 국정 운영은 정의와 절제라는 두 축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유화 정책을 거부했다. 그러나 성전(crusade)의 길로도 빠져서는 안 된다.

    군사적 승리는 갈등 종식의 시작일 뿐이다. 지금은 다음 10월 7일을 막고, 동시에 끝없는 전쟁의 오류를 피할 평화를 구축할 냉철한 작업의 시간이다.

    물론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다. 그러나 총성이 잦아드는 날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국가 지도자들의 시간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6-19 07:26]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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