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30] ‘공립’은 ‘국가’나 ‘정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Washington, D.C.’s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워싱턴 D.C. 윤리 및 공공정책 센터 수석 연구원)

  • 미국 연방대법원은 최근 ‘세비야의 성 이시도르 가톨릭 온라인학교 대 드러먼드 사건’에서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오클라호마 주 대법원이 해당 학교를 주(州)의 공립 차터스쿨 프로그램(CSP, 공립 인가 학교의 설립, 확장 및 복제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연방 보조금 프로그램)에서 배제한 모호한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습니다. 노트르담 대학의 리처드 가넷 법학 교수는 ‘Law & Liberty (법과 자유)’에 게재한 훌륭한 글에서 오클라호마 대법원의 판단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오클라호마 주 대법원은 성 이시도르 학교를 배제한 것이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헌법 원칙을 위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헌법상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이 판단은 틀렸고, 연방대법원의 관련 판례들과도 어긋납니다.

    최근 일련의 판결들에서 연방대법원은 정부가 종교적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이 있는 수혜자나 계약 파트너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해왔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전부터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의 ‘국교금지 조항’이 세속 정부와 종교 기관 간의 협력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해왔습니다. 이러한 협력은 미국 역사 속에서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오늘날 공공 정책 전반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지역사회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이 성 이시도르 사건에서 4대 4로 결론을 유보한 것이 곧 ‘학교 선택 운동’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운동은 21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시민권 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가넷 교수의 말처럼, “이번 소송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결말은, 다른 법정들이 다른 사건에서 차별금지 원칙을 확인하고, 종교학교가 차터스쿨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일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미국의 많은 주립 초중등학교가 처한 비참하고, 때로는 부패했다고도 할 수 있는 현실은 공화정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DOGE(디지털 자산 시장의 혼란)나 바이든 행정부의 “Politburo 공산당의 주요결정부서를 빗댐)”이 대통령의 무능을 은폐한 사건들과 맞먹는 위협입니다(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Original Sin』이라는 책에 정리돼 있습니다). 국민이 글을 읽거나 계산을 할 줄 모르고,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왜곡된 정보를 믿게 되면, 공화국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 국민’은 무지의 심연에서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는 군중 집단으로 분열되고 맙니다. (익숙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미국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공립학교들이 세금 자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실은 언어의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공립학교(public school)’라는 표현은 도처에서 쓰이지만, 훨씬 더 정확한 명칭은 ‘주립학교(state school)’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도심의 가톨릭 학교들은 많은 비가톨릭 학생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이는 종종 국가가 운영하고 교원노조가 지배하는 학교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공공 서비스를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 성취도 통계를 살펴보면, 이들 도심 가톨릭 학교의 학생들은 보통 주립학교 학생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으며, 후자의 학교들은 훨씬 많은 예산을 받고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고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원노조와 국가 교육 관료들이 ‘공립학교’라는 개념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공립(public)’이 ‘공동선을 위한 봉사’를 의미한다면, 이 주장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차터스쿨, 크리스토 레이 학교 네트워크, 볼티모어의 마더 메리 랭 가톨릭 학교와 같은 비정부 교육기관들은 ‘사립’ 학교가 아닙니다. 이들은 공익과 공동선을 위한 독립적 학교들이며, ‘공립학교는 오직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살아있는 증거들입니다.

    가넷 교수의 간결한 말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공 교육의 진정한 개념은, 정부 소유 건물에서 공무원이 일해야만 성립된다는 식으로 제한될 이유가 전혀 없다.”

    교육받은 시민은 건강한 민주 공화국의 필수조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을 지원하는 것은 정당한 국가 권력의 사용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 체계는 세금이 반드시 국가 소유 학교나 국가 고용 교직원들에게만 쓰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직을 소명(vocation)이 아닌 직업(job)으로 여기는 교원노조와, 이들에 굴복한 정부가 운영하는 학교들이 팬데믹 기간인 2020–2021년 동안 보여준 비참한 실적은 공교육의 심각한 기능장애를 드러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가 교육 시스템의 개혁을 원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금 독점 체제를 깨뜨리고 경쟁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경쟁은 개혁의 어머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성 이시도르 사건에서 책임을 미뤘습니다. 그러나 학교 선택의 대의는 계속되고 있으며,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 국민”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6-20 07:00]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 다른기사보기 리베르타임즈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