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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이 감정에 북받친 문장은 어느 시인의 시구가 아니라, 북한 체제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본 내 조총련 소속 학생들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에게 바친 ‘충성편지’에 담긴 한 구절이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재일조선학생소년대표단’이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총련의 아들딸들이 경애하는 원수님께 드리는 감사와 충성의 서한”이라 극찬했다.
그러나 이 편지 전문을 읽어본 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이는 더 이상 ‘교육’이라기보다, 조직된 세뇌의 결과이자 체제 우상화의 생생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원수님 품은 영원한 태양”이라는 표현의 본질
편지에는 “꿈결에도 달려가 뵙고싶고 안기고싶다”는 애틋함부터 “조국의 모든 학생들에게 새 교복을 입혀주는 다심하신 손길”이라는 미화까지 이어진다. 이런 찬양은 감성적 과잉을 넘어 ‘개인숭배’라는 정치문화의 극단을 드러낸다. 어린 학생들이 쓰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도식적인 문장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이 편지는 누가 보더라도 자발적 정서 표현이라기보다는 철저한 지도와 통제하에 작성된 정치적 문서에 가깝다.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 고마움의 큰절을 드린다”거나 “강대한 조선의 자긍심”을 강조하는 표현은 마치 전체주의 국가의 충성 맹세문처럼 읽힌다. “사회주의 문명을 향유하며 행복의 무아경에 휩싸였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 편지가 과연 일본 사회에 살고 있는 청소년의 현실감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조총련 학생들을 통한 북한의 ‘해외 체제선전’
문제는 이 편지가 단순한 개인적 감상이 아니라 북한 당국의 철저한 연출 속에 이루어진 ‘정치극’이라는 점이다. 재일조선학생들의 방북은 통상적인 교류활동이 아니라, 체제의 정당성을 부각하고 충성심을 이식하기 위한 대표적인 외곽 선전활동이다.
이번 편지는 단지 김정은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가 아니다. 이는 조총련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자유세계에 사는 청소년들에게까지 ‘수령 체제의 축복’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정치선동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집단찬양’은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율성마저 억압하는 구조적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유가 실종된 교육,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교육이란 질문을 던지는 법을 가르치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편지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국가가 허락한 감정’만을 고백하며, ‘조국이 지정한 진실’만을 받아들이고 있다.
“애국주의정신과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억년 드놀지 않을 넋으로 간직하겠다”는 다짐은 단순한 민족 정체성의 강조가 아니다. 이는 특정 정치이념에 기반한 ‘사상주입’에 가깝다. 이런 교육은 자유로운 사고의 발현을 억누르고, 결국 ‘복종하는 인간’만을 길러낼 뿐이다.
체제 미화에 이용된 청소년, 진짜 피해자는 누구인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감격’만을 반복하는 이 편지 속 청소년들이야말로 진짜 피해자다. 그들은 자신이 체험한 것의 의미를 자유로운 사고로 분석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국가가 요구하는 감정을 ‘암송’한다. 북한이 전 세계 청소년 인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면, 바로 이런 장면 때문이다.
이 편지는 단순한 정서적 헌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독재 체제가 청소년의 마음까지 장악해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슬픈 풍경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