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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내륙국 라오스가 조용히, 그러나 확고히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편입되고 있다. ‘일대일로’ 전략의 거점이 된 이 작은 나라는 이제 중국의 경제적 위성으로서, 외교·재정·정치 전반에서 자주권 상실의 위기를 맞고 있다.
■ “고속철이 열리고, 주권은 닫혔다”
2021년, 라오스는 자국 최초의 고속철 ‘중-라 철도’를 개통했다. 중국의 윈난성 쿤밍과 수도 비엔티안을 잇는 422km의 이 노선은 전액 중국 자금으로 건설되었고, 이후 라오스 경제와 교통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 철도는 단순한 물류 통로를 넘어 중국-라오스 경제 일체화의 시발점이 되었고, 농산물 수출·관광·무역 인프라 확장을 위한 일련의 거대 프로젝트를 잇달아 촉진했다.
그러나 이 성장은 결코 ‘무상’이 아니었다. 라오스의 대외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20%를 초과했으며, 그 중 절반 이상이 중국에 대한 채무다. 코로나 팬데믹과 인플레이션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라오스 정부는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전력·통신·항공 등 국가 전략자산을 중국 기업에 일부 매각하는 수순을 밟았다.
■ 경제 식민지화? “모딘은 더 이상 라오스가 아니다”
라오스 북부, 중국 국경에 인접한 모딘(Boten)은 그 변화의 상징과도 같다. 중국 기업이 부동산, 호텔, 카지노, 보안까지 장악하며 도시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거리 간판은 대부분 중국어, 보안요원은 중국인, 투자자도 중국인, 소비자도 중국인이다. 치안 관리에까지 중국 보안업체가 관여하는 모습은 실질적 영토화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딘의 카지노 산업은 중국 자본과 관광객 유입에 힘입어 급성장했지만, 동시에 자금세탁, 마약,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라오스 정부는 이를 경제 발전의 신호로 해석하지만, 일부 시민단체와 국회의원은 “이것이 과연 우리 땅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일당 독재 체제 아래, 이 같은 비판은 쉽게 묻힌다.
라오스 인민혁명당은 중국 공산당의 지원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주요 정책과 개발 전략은 중국의 계획과 궤를 같이 한다. 외형상 독립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실제 결정 과정에서는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군사 개입이 아닌 경제·문화적 방식으로 영향력을 투사한다. 이를 통해 라오스는 외형적 자주성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적 종속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는 중국이 동남아 전역에서 취하는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 국민 인식도 점차 변화… “중국은 발전의 동반자?”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도 불구하고 라오스 일반 국민의 여론은 분열적이다. 일부는 저렴한 철도 운임, 다양한 중국산 제품, 새로운 일자리 기회를 반기며 중국을 ‘도움이 되는 이웃’으로 인식한다. 중국-라오스 간 국제결혼도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그 이면엔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경제적 이득을 얻은 대가로 정치적 주권과 사회적 독립성을 상실해가는 라오스의 모습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대일로’가 무엇을 남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라오스는 지금, 조용한 속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외형상 독립국이지만 경제와 정책, 심지어 도시 공간과 시민의 일상마저 중국의 틀에 맞춰 재편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단지 철도와 다리를 놓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마저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라오스는 과연 이 침묵 속의 예속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 동남아에서 가장 중요한 주권의 시험대가 펼쳐지고 있다.
안·두·희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