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일랜드의 종교 및 사회에 관한 아이오나 연구소(Iona Institute for Religion and Society)가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는, 아일랜드 내 종교와 가톨릭 교회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조명해주고 있다. 그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응답자의 61%는 자신을 “종교적이거나/또는 영적인 존재”로 묘사했지만,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석한다고 밝힌 사람은 단 16%에 불과했다. (참고로 점성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는 비율은 18%였다.) 전체 성인의 절반은 기도를 하고, 10명 중 3명은 명상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대목은 다음 문장에 대한 응답이었다. “나는 가톨릭 교회가 아일랜드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면 기쁠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25%였다.
다시 말해, 아일랜드인 4명 중 1명(약 130만 명)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그 신앙 안에서 위로와 생명력을 얻으며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세대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교회를 단지 더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멸시키기를 바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욕망은 결코 마음속에만 조용히 머무르지 않는다. 교회의 종말을 앞당길 법률과 규제들을 추구하게 되고, 낡은 제도에 대한 모든 지원을 철회하자는 요구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교회를 없애는 것을 넘어서, 역사를 장악함으로써 교회를 역사에서 삭제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아일랜드의 문화 발전과 성취에 기여한 긍정적인 가톨릭의 흔적을 지속적으로 지우려는 작업이 그 예다.
나는 이전에도 아일랜드의 유명 감독이자 각본가인 닐 조던(Neil Jordan)이 2024년 BBC 인터뷰에서 보인 교묘한 왜곡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조던은 중산층 영국 라디오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1950~60년대의 가톨릭 아일랜드에는 영화 제작이 전무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자란 아일랜드는 여전히 문명화되지 않은 곳이었다. 말하자면 파괴된 듯한, 가톨릭 교회가 지배하는 세계, 미신으로 가득 찬 구조였지요.” 더 최근에는 한 예술 기관 관계자가 가톨릭 해방 운동의 지도자인 다니엘 오코넬(Daniel O’Connell)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톨릭 해방’이라는 말 자체를 피하려다 뇌 손상을 입을 법한 곡예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현상은 올 여름 더블린에서 열리는 두 전시회에서도 확인된다. 국립미술관은 에비 혼(Evie Hone)과 메이니 젤렛(Mainie Jellett)이라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기념하고 있다. 이들은 둘 다 아일랜드 성공회(Church of Ireland) 명문 가문 출신으로, 혼은 아일랜드 은행 이사의 딸이고 젤렛은 국회의원의 딸이다. 그러나 혼은 1937년, 40대 초반에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한 성공회 귀족 여성 예술가, 현대주의 예술의 선구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바로 그 해, 아일랜드 국민은 “모든 권위의 근원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새 헌법을 채택했다. 그리고 혼을 교회로 받아들인 이는 존 찰스 맥퀘이드(John Charles McQuaid) 대주교였다. 맥퀘이드와 당시 총리 에이먼 드 발레라(Éamon de Valera)는 오늘날 자유주의적 아일랜드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인물들이다. 혼은 1955년 미사를 가던 중 세상을 떠났으며, 말년까지 예술가로 활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음에도, ‘History Ireland’ 잡지의 해당 전시에 대한 기사는 혼의 개종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트리니티 칼리지 소장 작품 설명에서는 그녀가 한때 성공회 수녀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시험했던 사실, 그녀의 ‘깊은 영성적 기질’에 대해서는 말하지만, 가톨릭 개종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해당 작품은 이라는 명백히 가톨릭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더블린의 명망 높은 휴 레인 미술관(Hugh Lane Gallery) 웹사이트의 작가 소개에도 그녀가 “매우 영적인 인물”이며 “아일랜드 종교미술의 부흥에 관심을 가졌다”고만 쓰여 있을 뿐, 가톨릭 개종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는 그녀가 개종 이후 제작한 종교 주제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편, 아일랜드 문학박물관(Museum of Literature Ireland)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데 프로푼디스(De Profundis)를 기념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데 프로푼디스는 감옥에서 그의 연인이었던 알프레드 더글라스 경(Lord Alfred Douglas)에게 쓴 편지로, 1900년 와일드는 이 글을 쓴 지 3년 만에 가톨릭 교회에서 임종세례를 받고 영세하였다.
“모든 이는 그분의 현존에 예정되어 있다.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다”고 그는 썼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홍보 영상에는 그리스도나 교회에 대한 이 깊은 명상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열두 개의 데 프로푼디스 발췌문이 낭독되지만, 종교적 내용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웹사이트에 게시된 책과 작가 소개에도 와일드의 종교적 고뇌와 회심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검열이나 성적 억압 같은 소재에서는 교회를 쉽게 조롱하면서도, 문화사 전반에 걸쳐 교회가 기여한 흔적은 아예 지워버리려는 이 아일랜드의 진보 진영은, 박물관 도록, 전시 보도자료, 회고전 서문 등을 통해 가톨릭을 ‘사라지게 만들’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는 듯하다. 아이오나 설문조사가 보여준 “가톨릭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란다”는 바람을 실현하는 데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가 자기 자신과 자기 역사를 정직하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