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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11 |
북한 당국은 최근 지방공업공장 건설과 운영 성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노동신문은 재령군과 은파군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공장 사례를 열거하며 “자기의 것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신심이 백배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체계 없는 개발과 자력갱생이라는 낡은 이념에 기반한 허구적인 ‘성과 극대화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지방이 변하고 있다”? 실질 없는 ‘상징 정치’
노동신문은 새로 건설된 20개 지방공업공장이 지역 주민들에게 긍지와 신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한다. “우리 고장 제품이 제일입니다!”라는 구호를 반복적으로 인용하며, 지역민들이 제품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실질적 품질이나 시장성과는 무관한 ‘정서적 충성심’과 ‘총비서 찬양’의 논리를 강요하는 선전 전략에 불과하다.
공장 운영 초기부터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고 생산 기술이 부족했음을 노동신문 스스로도 시인하고 있다. 중앙에서 기술자를 파견받고 평양의 고급 기능공에게 배워야 했다는 내용은 지방공업의 자립기반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 결함은 문제제기나 반성의 기회가 되지 못하고,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당의 은정을 느꼈다”는 식의 감성적 서사로 치환된다.
▣ 기술혁신 아닌 ‘정신력’ 강조…현실 왜곡 심화
보도에 따르면, 종업원들은 설비 개발, 제품 포장, 품질 개선 등을 자력으로 해내고 있으며, 원격교육을 통해 ‘기술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의 상당 부분은 ‘정신력’과 ‘헌신’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적 표현에 머물 뿐, 과학적 관리체계나 산업적 생산성에 대한 분석은 철저히 결여돼 있다.
예컨대, 가정용 세제나 식료품을 생산하는 수준을 두고 “우리 식 사회주의 문명의 참모습”이라고 찬양하는 것은 현저한 과장이다. 그마저도 실질적 생산설비는 대부분 중앙에서 이관되거나, 기존 생산기술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제품의 경쟁력이나 지역경제의 자생력은 언급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중앙의 도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는 정치적 자위에 불과하다.
▣ 당 찬양을 위한 주민 동원…지방개발 아닌 주민관리
이번 기사에서 특히 문제적인 대목은, 공장 종업원은 물론 농장원과 노인들까지 ‘자기 고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땀을 바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는 주민 생활의 질 개선이 아닌 ‘정치적 동원’이 우선임을 보여준다.
농업 노동자들이 공장 제품의 향기를 맡으며 기뻐한다는 비현실적 묘사는 도리어 국가가 주민을 선전 도구로 삼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방개발은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여전히 주민을 ‘동원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공장의 설비보다는 ‘김정은의 지침’과 ‘로고의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당의 은덕에 보답하는 마음’이라는 주입된 구호는, 비판이나 성찰 없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는 사회 구조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노동신문은 ‘10년 안에 전국 200개 시군에 이런 변화가 펼쳐질 것’이라며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북한은 심각한 국제 제재 하에 있으며, 핵 개발을 이유로 외자 유입이나 국제 협력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류, 인프라, 자원 공급 모두가 중앙 집중형이며, 지방이 독립적 생산과 유통을 감당할 능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공업이 한두 공장에서 겉치레용 제품을 만들어내는 수준에서 머무는 한, 이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발전도, 자립경제도 될 수 없다. 오히려 “자기의 것에 대한 사랑”이라는 구호는 시장 접근과 현대기술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폐쇄적 슬로건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 ‘자기 것’ 환상에서 벗어나야
노동신문의 이번 보도는 자립과 자강의 신화를 반복하는 선전문학의 전형이다. 그러나 진정한 발전은 ‘자기 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가 아니라, 현실적 조건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국제적 협력과 기술혁신으로 대응할 때 가능하다.
‘우리 고장 제품이 제일’이라는 자화자찬은 주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며, 오히려 폐쇄성과 경직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지방의 진흥은 곧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이어야 한다. 현재 북한이 보여주는 방식은 주민을 위한 지방개발이 아니라, 체제 유지를 위한 ‘지방 동원’일 뿐이다.
경제보다 정치가 앞서고, 생산보다 충성이 요구되는 체제에서 ‘신심 백배’는 현실 도피적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