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51] 주님 승천 대축일과 인간 퇴비화에 대하여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Washington, D.C.’s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워싱턴 D.C. 윤리 및 공공정책 센터 수석 연구원)

  • 주님 승천 대축일(Solemnity of the Ascension)을 부활 제7주일로 이관한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결정입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위대한 축일을 묵상할 수 있는 교회의 전례적 시기를 단축시킨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늘날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 축일이 지닌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승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주님의 승천은,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성자께서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해 취하신 인성(human nature)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강생을 기념하는 주님의 탄생 예고 대축일(Solemnity of the Annunciation)은 우리 인간성이 하느님의 역사 내적 활동을 담아낼 수 있는 합당한 그릇임을 알려줍니다. 이에 더해, 주님 승천 대축일은 인성이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진화의 도약(evolutionary leap)’이라 불렀던 부활(Resurrection)을 통해 영화롭게 되어 — 이제 삼위 하느님의 자기희생적 사랑과 수용의 영원한 친교 안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승천 미사의 본기도(Collect)가 언급하듯, 그리스도의 승천이 곧 “우리의 드높임(exaltation)”이 되는 것은 “영광 중에 머리이신 분이 먼저 가신 그 길을 몸인 우리가 희망 가운데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헛된 공상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수난 전에, 당신 자신과 그 사명에 일치하는 자들이 결국 성부의 집으로 함께 들어가게 되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3,36; 14,2 참조).

    승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1)는 표현을 단순한 공간적 사건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회의론자들은 이를 마치 영화 ‘탑건: 매버릭’ 서두에서 톰 크루즈가 초음속 비행을 하듯, 예수님께서 우주로 솟구쳐 올라가신 것처럼 여기며 조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승천은 초역사적(transhistorical) 실재로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즉,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면서도, 역사를 초월하여 인류의 참된 목적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그 목적지는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Kingdom of God)라 부르셨던 영원의 삶입니다.

    승천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 이후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며 “하느님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하셨다”(사도 1,3)는 부활 발현 시리즈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발현에서, 만물과 역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넘어서는 영광스러운 창조의 완성을 가리키십니다. 이는 곧 “새 예루살렘”(묵시 21,2), 곧 “죽음이 더 이상 없고… 이전 것들이 모두 지나간”(묵시 21,4)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주님의 승천은 오늘날의 인간 이해의 위기에 대한 교회의 응답의 핵심입니다.

    이 위기는, 이른바 “자연 유기적 환원(natural organic reduction)”이라는 오웰식 명칭 아래 행해지는 혐오스러운 실천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환원’은 고온성 미생물을 이용해 사람의 유해를 퇴비화하여, 홈디포(Home Depot)에서 판매되는 퇴비처럼 토양 비료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생태주의자들은, 인간 퇴비화가 시신을 땅의 영양분으로 환원시키므로 환경적으로 유익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솜 전투에서 전사한 7만 2천 명의 영국 제국군 유해가 끝내 발견되지 않은 채 잊혀졌던 것을 기억하는 유족들이, 사랑하는 이의 운명이 그렇게 되는 것을 상상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극단적 생태주의자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이 숭배하는 거짓 신, 가이아(Gaia)를 드러낸 셈입니다.

    현재 인간 퇴비화는 미국 13개 주(워싱턴, 콜로라도, 오리건,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욕, 네바다, 애리조나, 델라웨어, 메릴랜드, 미네소타, 메인, 조지아)에서 합법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있어, 해당 교구의 가톨릭 교회는 시신을 비료로 전환하는 입법을 반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생명윤리 문제에 있어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일부 가톨릭 생명윤리학자들은 이 실천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유해를 비누로 만들었던 나치 강제수용소의 잔혹한 전례조차 연상시키는 이 관행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부 가톨릭 지지자들이 말하듯, 인간 퇴비화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세 3,19)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인간을 단지 우주의 화학적 우연의 산물로 보는 비틀린 인간학(anthropology)의 표현입니다.

    수십억 년에 걸쳐 우연히 생겨난 생화학적 부산물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이지요. 반면, 주님의 승천은 창세기부터 묵시록에 이르는 성경적 인간학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곧, 우리는 단순히 응축된 별가루(Stardust)가 아니라, 사랑의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존재이며, 그 운명은 망각도, 비료도 아닌, 영화로운 영광입니다. 그 영광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안에 이미 드러났습니다.

    과연 어느 쪽의 인간관이 더 인간적이며,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어느 쪽이 인간의 행복과 사회적 연대를 가능케 할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결국 퇴비가 될 존재라는 관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7-11 06:16]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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