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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20 |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기고문을 통해 1970년대의 “혁명전통교양도서” 편찬 작업을 극찬하며, 이를 “수령의 혁명역사를 빛내는 인민의 제일가는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 인식과 도서 편찬의 본질은 과연 순수한 교육과 계몽이었을까? 아니면 지도자 우상화와 권력의 영속을 위한 조직적 미화 작업이었을까?
■ “혁명전통교양도서”는 역사서가 아니라 교리서였다
북한 당국이 말하는 “혁명전통교양도서”란 김일성의 항일투쟁과 김정일의 혈통을 찬양하고 신화화하는 정치적 선전물이다.
노동신문은 당시의 교양도서들을 “혁명의 만년재보”로 칭하며 전세대의 “신념”과 “충성”이 깃든 성스러운 작업이라 주장하지만, 실상은 김씨 일가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직적 과거 미화였다.
특히 림춘추, 오진우, 박성철 등 당시 고위 간부들이 집필에 참여했다는 점은 이 도서들이 역사학적 검증이나 학문적 독립성을 갖추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모두 김일성 체제의 핵심 인물들이며, 정치적 목적 아래 자발적으로 수령 중심의 “집단 기억”을 구성하는 데 앞장섰다.
문제의 핵심은 항일투쟁의 독점적 해석이다. 북한은 마치 항일 빨치산 전통을 김일성 개인이 주도하고 주체적으로 수행한 것처럼 서술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과는 크게 다르다.
김일성의 항일경력은 중공군 및 소비에트군의 일부 활동에 편입된 정도였으며, 그마저도 국제공산주의 전선의 일부였다.
그럼에도 “항일의 전구를 밟아가며 자료를 발굴했다”는 표현으로 그 과정을 신성화하고, “붉은 해발아래 항일혁명 20년” 등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기록물들이 무비판적으로 반복 재생산되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전기적 이미지 구축에 불과하다.
■ 도서는 교육이 아니라 ‘충성심 훈련 도구’
노동신문은 당시 대학 교원, 작가, 연구자들이 밤낮없이 집필에 매달렸다고 자랑한다. 심지어 “두 눈이 충혈되고, 입술이 부르터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학문과 지식의 자유가 철저히 억압된 현실을 드러낼 뿐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독립적인 역사 서술자가 아닌,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였다. 북한 사회에서 지식인은 ‘당의 선전가’로 기능해야 하며, 그들의 집필은 진실보다 충성, 사실보다 감동, 자료보다 상징에 기반한다.
기고문 말미는 “백두의 붉은기”, “빨찌산의 돌격나팔소리”,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구호들로 가득하다. 이 같은 극단적인 언어는 도서가 학문이 아닌 신념의 도구, 즉 하나의 ‘정치 교리서’였음을 웅변한다.
이는 수령에 대한 충성과 체제에 대한 절대복종을 강요하는 문화로, 비판적 사고와 역사적 성찰을 철저히 배제한다. 결국 이 도서들은 민중에게 과거를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판단력을 마비시키려는 도구였다.
한편 같은 지면에 실린 삼지연감자가루공장 관련 기사도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김정은이 감자가루 공장을 여러 번 시찰하고 “설비는 내가 마련한 살붙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지도자의 인간적 이미지와 결합된 정치 선전의 전형이다.
여기에서도 공장의 기술적 성과나 정책적 목표는 부차적이고, 지도자의 은혜를 체감하고 보답하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공장 종업원은 경제 주체가 아니라, “사랑에 감사하며 감자가루를 꽝꽝 찍어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 역사는 ‘기억’이 아니라 ‘검증’의 대상이어야 한다
북한이 강조하는 “수령의 혁명역사”는 철저히 기획되고 편집된 정치신화이다. 그것은 사회주의 건설의 동력도 아니었고, 역사 인식의 발전도 아니었으며, 오직 1인 권력 체제의 정당화 수단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러한 기고문을 다시 읽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이 얼마나 조직적인 기억 조작이었는지를 드러내고, 역사란 권력이 아니라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서다.
역사란 우상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과오를 직시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거울이어야 한다. 그 거울을 외면한 나라는 반복된 신화 속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