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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식 추기경 |
한국을 '휴가차' 찾은 유흥식 추기경의 행보가 단순한 귀국길이었는지, 정치적 의도를 담은 공개 퍼포먼스였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바티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이자 한국인 추기경으로서 교황청 서열상 2인자 반열에 오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이 최근 방한 중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시도했다가 유엔군사령부의 불허로 무산된 사실이 알려지며,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절차 미비로 인한 해프닝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바티칸 고위 성직자가 국내 민감한 안보 지역에 발을 들이려 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지 않다.
유엔사는 유 추기경 측이 “기존 절차와 일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JSA 출입을 요청했으며, 이에 따라 “모든 개인의 안전과 보안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승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DMZ 출입을 위해서는 최소 48시간 전 사전 승인이 필요하지만, 유 추기경 측의 신청은 이보다 촉박한 시점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점과 의도다. 유 추기경은 바티칸 관료로서의 직무상 공식 외교 사절도 아닌 상태에서, 그것도 ‘휴가차’ 방문한 한국에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상징하는 최전방을 찾으려 한 것이다.
이같은 행보가 단순한 사목적 관심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국내외 언론 노출을 염두에 둔 상징적 메시지를 노린 것인지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각에서는 유 추기경이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북한과의 ‘종교적 평화협력’ 논의를 꾸준히 제기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번 시도가 일종의 '남북 종교 외교'를 시도하려는 행보였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사 불허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 쇼맨십만 남았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더욱이 현재 유엔사의 DMZ 출입 통제권을 두고 국내 일각에서 “주권 침해”라는 정치적 공세가 재점화되는 가운데, 유 추기경의 무산된 방문이 이런 논쟁에 불필요한 불씨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역시 “정부가 평화적 목적으로 영토를 이용하는데 제한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유감을 표했으나, 이는 군사협정 당사자인 유엔사와의 긴장관계를 부추길 수 있는 발언으로 비쳐질 수 있다.
교회의 역할은 정치에 깊이 개입하기보다, 갈등과 분열의 한복판에서 중재와 일치를 도모하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유흥식 추기경의 이번 행보는 정치와 종교의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안인 DMZ 출입 문제에 교황청 고위 성직자가 '선의의 사목'을 명분으로 개입하는 것이 과연 신중했는지 되묻게 된다.
결국 유 추기경이 남긴 것은 평화 메시지도, 사목적 위로도 아닌, 정치적 논란의 그림자였다. 교회가 공적인 공간에서 더욱 깊은 신뢰를 얻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사려 깊은 언행과 경계선에 대한 분별력이 절실하다.
차·일·혁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