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지, 인종이 아니다”—오늘날 많은 성서 해석자들은 이 간결한 격언을 통해 바오로의 복음을 요약하곤 한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바오로는 계약 공동체를 민족적 뿌리에서 단절시키고, 이스라엘의 특수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이고 영적인 실재로 대체하였다.
유다인들이 계약 공동체의 구성 자격으로 민족 정체성을 고집했던 점이 문제였고, 바오로는 이를 극복했다는 것이다. 곧 복음은 민족주의를 초월한 포용의 승리이며, 바오로는 진보적 세계시민주의의 사도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만약 이 이야기가 거꾸로 되어 있다면 어떨까?
제이슨 스테이플스의 저서 『바오로와 이스라엘의 부활: 유다인,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 그리고 이스라엘』은 신약의 복음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조망한다. 철저한 주해와 신학적 정밀성이 결합된 이 책은 존 바클레이의 『바오로와 은사』 이후 바오로 신학 분야에서 가장 중대한 기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스테이플스는 바오로에 대한 대중적 고정관념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정체성에 대한 오래된 신학적 전제에 도전한다.
스테이플스에 따르면, 바오로의 복음은 이스라엘의 민족 정체성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 회복은 역설적으로 이방인의 통합을 통해 실현된다. 이방인의 구원은 이스라엘 이야기에서 벗어난 우회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 성취의 핵심이다.
바오로는 민족으로부터의 구원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민족적 구원”을 선포했다. 그의 복음은 제2성전기 유다교의 회복주의적 희망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이 신학적·역사적 틀 안에서 “유다인”은 남왕국 유다의 후손을, “이스라엘”은 북왕국의 열 지파를 포함한 열두 지파 전체, 특히 앗수르에 의해 유배되고 동화된 북왕국의 실종 지파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유배는 곧 “민족적 죽음”을 의미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들 사이에 흩어지고 흡수된 과정은 스테이플스가 “이방화(Gentilization)”라 부른다. 이들의 회복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부활을 필요로 했고, 바오로는 이 부활이 바로 이방인의 귀속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선포한 것이다. 이 구원은 바오로 생애 중 부분적으로 실현되었고, 미래에 완전한 성취를 기다린다.
이스라엘이 열방에 흩어지고 동화되었기에,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방인에게 구원이 도달함으로써 실현된다(로마 11:11–26). 하느님은 당신의 섭리 안에서, 선택된 백성에게 주신 원초적 약속—곧 아브라함의 축복이 모든 민족에게 흘러가리라는 약속(갈라 3:14, 로마 11:12)—을 이방인의 통합을 통해 성취하신다. 스테이플스는 이를 도발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이스라엘이 이방화되었듯, 이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화되고 있으며, 하나의 민족에서 다른 민족으로 전환되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에 통합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화”가 이방인이 “유다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테이플스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바오로가 상상한 것은 보다 넓은 의미의 이스라엘 정체성의 재구성이며, 여기에는 유다인과 이전의 이방인 신자 모두가 회복된 새로운 백성으로 포함된다.
이스라엘의 민족 경계는 생물학이 아니라 신적 계약에 뿌리를 두며, 확장을 허용한다. 바오로의 손에 의한 이 확장은 추상적이고 뿌리 없는 “하느님의 백성”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갱신된, 구체적인 민족—열방 가운데서 다시 태어난 이스라엘—을 낳는다.
스테이플스에 따르면, 신체적 할례를 받지 않은 이들의 포용은 이스라엘을 배제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기치 않게 더 많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방식이며, 죽은 이들의 부활에 비견될 만한 과정”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이방인은 단지 이방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 그들은 스테이플스가 “민족적 개종”이라 부르는 변화를 겪는다. 그들은 문자적 의미에서 아니라, 계약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회복된 이스라엘의 완전한 구성원이 된다. 이것이 바오로가 전하는 놀라운 복음이다. 이방인은 더 이상 외부인이 아니며, 유다인과 함께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자들이다(로마 11:26).
스테이플스는 이 회복이 원래 열두 지파의 후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조명한다. 이는 겸손과 희망의 메시지이다. 자신을 민족적으로 이방화시켜 열방에 동화된 이들은 인류 보편 속에서의 특수성을 상실했고, 그 결과 동일한 심판 아래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 구원이 도달했다는 사실은, 신앙을 잃은 이들도 그리스도의 성령 안에서 새 생명을 통해 구원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다인 또한 이방인의 통합이 자기 민족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독해는 바오로 시대의 유다인뿐 아니라 현대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깊은 함의를 가진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이스라엘 이야기 안에 재배치하게 하며,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대체신학의 유혹에 도전한다. 하느님의 백성을 규정하는 계약적 특수성과 다시 관계 맺을 것을 촉구한다. <계속>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