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64] 바오로의 민족적 복음 ②
  • 제임스 R. 우드 Redeemer University 종교신학 부교수

  •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자신의 신앙이 이스라엘의 민족성 안으로 통합된 것임을 인식하는가? 이 민족적 입양을 구원의 일부로 인식하는가? 아니면 이 복음의 측면은 외면당했는가?

    바오로는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 받은 유다인과 동등하게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대단히 중대한 것으로 여긴다. 오늘의 우리는 그 사실을 얼마나 무게 있게 받아들이는가?

    바오로의 복음이 이방인의 통합을 통한 이스라엘의 민족적 부활을 포함한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이 이 백성 안으로 입양되었다는 신학적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바오로는 추상적인 영적 집단을 상상하지 않았다. 그는 메시야의 약속에 뿌리를 둔, 구체적이고 변모된 민족 공동체를 상상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주된 민족 정체성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것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며,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어진다. 바오로의 민족적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우리의 궁극적 민족 서사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족보는 이스라엘의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졌다. 우리는 단지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이거나 위탁 자녀가 아니라, 양자된 합법적인 상속자들이다(로마 8:15–16; 갈라 3:29–3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족보상으로 말하자면, 족장들과 판관들, 임금들과 예언자들, 그리고 하느님의 계약 백성의 지속적 이야기 안에 뿌리박고 있다.

    스테이플스에 따르면, 이 새로운 민족성을 나타내는 표지는 주로 윤리적이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이 육적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는 이유다. 갱신된 이스라엘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나타내는 표징은 성령에 의해 심령에 새겨진 마음의 할례이며, 이는 새 계약의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성령을 통해 이방인은 민족적으로 변화되어 완전하고 동등한 “이스라엘인”이 되며, 이는 메시야에 대한 예배와 성사 중심의 공동체적 삶으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윤리적 삶은 공동된 도덕 원칙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전 세계적이고 가시적인 “민족적” 문화를 형성하는데, 이는 세속 문화와 구별되는 독특한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 이 정체성이 없다면 우리는 다시 이방화로 돌아가, 부르심 받은 이스라엘화로부터 탈선하게 된다.

    이스라엘화는 정치적·교회론적으로도 심대한 의미를 갖는다. 회복된 이스라엘에 통합된 이는 그 어떤 민족, 인종, 문화에도 최종적 충성을 둘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기존 정체성의 말소가 아니라 변형이다. 열방의 문화는 경쟁자가 아니라 장식물로서 이스라엘 안에 흡수된다. 이방인들이 접붙여질 때, 그들은 자기 고유한 배경의 은총을 함께 가져오며 “열방의 충만함”으로 이스라엘을 축복한다(로마 11:25).

    그러나 모든 구성원은 공동된 일치를 지향해야 한다. 올리브 가지들이 본래의 나무를 풍요롭게 하듯, 하나의 나무만이 존재한다. 바오로는 단일 계약 공동체에 뿌리내린 교회의 일치를 꿈꿨다.

    교회의 분열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지 못한 실패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백성이 경험한 과거의 불일치를 반영하며, 복음이 지향하는 “이스라엘화”를 방해하는 또 다른 이방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바오로는 다중된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의 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상했다. 우리는 이 공동 민족성 안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며, 옛 계약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이 일치의 명령은 단지 교회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의 사회적·정치적 위기에도 발언한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민족들을 치유하는 “이방적인 민족”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부르심은 모든 문화와 충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이른바 “유대인 문제”는 이제 “이스라엘 문제”로 재구성될 수 있다(여기서 “이스라엘”은 그리스도 안의 이방인까지 포함한다). 회심 이전의 민족적 서사는 상대화되어야 하며,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이루시는 신실하심의 이야기 안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이 통합은 근대 국가주의 신화나 인종 정체성을 중심에 두는 현대 사회 경향과 충돌한다. 회심을 통해 열방은 이스라엘 “안으로” 들어오되, 그 자리 그대로에서 그렇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초국가적·초인종적 민족성은 열방 가운데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방인의 통합을 통해 이스라엘을 부활시키심으로써 민족 간의 분열을 극복하는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이 새롭게 구성된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에서 불러 모았으되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으로 연합된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평화를 구현하고 매개한다. 그 존재 자체가 세상의 분열에 도전한다. 모든 이들이 이 백성 안에서 고향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과의 연속선상에 있는 새 계약 백성이며, 하느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구속하리라 하신 예언의 성취이다.

    스테이플스의 해석에 따르면, 바오로의 복음은 이방인에게 민족적으로도 깊이 의미 있는 복음이다.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이방인은 외인이 아니라 회복된 이스라엘 민족의 온전한 일원이 된다. 바오로는 말한다. “이방인들이 공동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되며”(에페 3:6)—이는 새로운 몸이 아니라, 지금 다시 살아난 이스라엘의 몸이다.

    “우리 백성”의 이야기는 근대 인종이론이나 민족주의 신화가 아니라 성경에 의해 쓰여졌으며, 교회의 역사 안에서 세대를 넘어 계속 이어진다. 우리의 선조는 구약과 신약의 성인들이며, 순교자들이고, 교부와 신학자들이며, 교회의 교도권 전통이다. 위대한 신앙 고백과 전통 문헌들, 교회의 사회교리는 모두 우리의 유산이다. 전례, 성가, 건축, 미술, 학문에 이르기까지 우리 공동체의 유산이다. 이 유산은 우리 정체성을 형성해온 섭리의 산물이며, 과거·현재·미래 세대를 연결하는 객관적 문화 자산이다.

    우리는 이 진정한 조국에서 비롯된 공동 유산을 중심으로 결집해야 하며, 이로써 정당한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회복된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신 민족성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독특한 백성, 곧 모든 민족으로부터 불려왔으되 하나의 민족 정체성으로 연합한 이 공동체가 바로 우리의 백성이다.

    그러나 바오로의 복음은 교회의 역사적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초기 교회는 유다인 지도층을 통해 이스라엘과의 강한 연속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방인이 주도권을 잡고 회당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방인이 이스라엘 안에 통합되었다는 인식은 희미해졌다. 대체신학은 단지 신학적 실수일 뿐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 망각이었다.

    바오로의 민족적 복음은 점차 영문화된 보편주의로 대체되었고, 후기 고대의 콘스탄틴주의, 근대 초기의 베스트팔렌 민족국가주의, 그리고 근현대 인종이론의 부상과 함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정치적 혹은 민족적 프로젝트와 동일시하려는 유혹에 직면했다. 이러한 정체성은 복음을 길들이고 말았다.

    스테이플스의 저서는 회복을 요구한다. 바오로는 민족성을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키려 했다. 한때 이스라엘의 시민권에서 멀어져 있었던 이방인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시민이 되었다(에페 2:11–22). 그들은 이스라엘의 부활에 온전히 참여한다. 바오로는 이 부활이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신비이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났다고 단언한다(에페 3).

    바오로의 복음을 수용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민족 서사를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뿌리 없는 영적 개인이 아니라, 시대와 민족을 초월하여 이어지는 계약 백성 안에 입양된 자녀로 보는 것이다. 이 독특한 백성—모든 민족에서 불려왔으나 성령 안에서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는 백성—이 바로 우리의 백성이다. 이것이 우리의 민족적 복음이다.  <끝>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7-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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