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박격포 포탄이 가자 지구에 있는 유일한 가톨릭 본당인 성가정 교회(Holy Family Church)에 떨어져 신자 3명이 순교하고 10명이 부상을 입는 참극이 발생했다.
해당 교회는 2023년 10월 7일 전쟁 발발 이후,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이 함께 피신해 있던 곳이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해당 사건이 탱크가 아닌 박격포에서 발사된 유탄의 오발로 인한 것임을 공식 확인했다. 이러한 비극은 분쟁지역 내 민간인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서방 세계의 분노가 섬세한 분별 없이 표현될 경우, 하마스가 선전하는 ‘무차별적 이스라엘 폭력’이라는 서사에 동조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들의 전략적 목적에 부역하게 된다.
하마스의 전쟁 전략은, 유례없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방위군이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죽이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삼아 학교, 병원, 아파트, 모스크, 심지어 교회 안에 숨어 공격을 감행한 후, 이스라엘의 반격을 유도하여 민간인 피해를 발생시키고 이를 국제사회에 ‘증거’로 제시한다.
반면, 이스라엘은 인질 구출(현재도 50명이 생존한 채 억류 중)과 하마스 제거라는 전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도덕적 시선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편향된 비판은 인간 방패 전술을 억제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며, 민간인 피해를 줄이는 데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 발발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가정 교회를 성지 내 기독교 생존의 상징으로 들어올렸고, 매일 교회에 전화를 걸어 위로를 전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물론 서방 세계 전반이 아직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을 향한 연대의 표현이 종종 종교적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행위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대한 묵시적 지지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명분은 수차례 폐기되었고, 그 자리를 이스라엘 파괴라는 목표가 대체해왔다. 최근 들어 이러한 민족주의는 단순한 국가 해방의 차원을 넘어, ‘억압자’ 계층에 맞선 전 지구적 해방운동의 이념적 창끝이 되었으며, 그 출발점이 이스라엘일 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러한 흐름에 무분별하게 편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중동 지역의 수많은 기독교 공동체에 비해 과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고통을 폄훼하는 말은 아니지만, 많은 서방 시민들은 중동 내 다른 기독교 국가나 공동체의 존재조차 모른다.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는 약 2만 명, 가자 지구에는 수백 명의 그리스도인이 남아 있다. 이를 모두 합쳐도 레바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1% 수준이며, 아르메니아 인구의 0.5%, 이집트 콥트교도의 약 0.25%, 아랍만 지역에 있는 필리핀계 기독 이주 노동자의 1% 정도에 불과하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 지역은 관광객 감소, 범죄 증가, 이슬람주의 정서의 확산으로 인해 거주 여건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정착민들과의 충돌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사실상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최종적인 ‘엑소더스’와는 큰 관련이 없다. 베들레헴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조차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 라틴 총대주교청도, 이스라엘 정부도 이들의 이탈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거나 생계를 지원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진실은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만 은밀히 공유될 뿐, 외부에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는 하마스나 이슬람주의에 대한 정직한 발언이 그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조차 진실을 외면하거나 은폐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다 깊고 본질적인 문제는, 중동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dhimmi (보호받는 자 라는 아압어,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이 아닌 비무슬림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지위를 의미)’의 조건 아래 살아왔다는 데 있다. 이는 이슬람권에서 유일신을 믿는 비이슬람인(기독교인 및 유대인 등)에게 주어졌던 조건부 관용 체제로, 정치적 권리는 부정되며, 보호 명목으로 특별 세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 제도는 영어에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이 없지만, 중동의 소수 종교인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용어다. 학자 하비브 말릭(Habib Malik) 등이 지적하듯, 이 제도는 세대를 거치며 기독교 공동체의 급격한 쇠퇴를 초래했다. 이들은 자유와 종교적 권리를 찾아 서방으로 떠나야 했다.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들은 전형적인 ‘디미’이다. 하마스의 압박과 폭력에 의해 많은 이들이 쫓겨났고, 남은 이들조차 글로벌 이념 전선에 동원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이 이념 전쟁의 최종 목표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서구 전체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위험에 처한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서방 전체를 위해서도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물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자비는 우리의 사명이지만, 불완전하게 인지되고 조작된 도덕적 감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그 피해는 단지 그리스도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으며, 무슬림과 유대인에게도 영향을 준다.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들은 성가정 교회 사건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지켜보았고, 그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과 무기 제공 중단 요구로 이어지는 양상을 확인했다. 그들은 이러한 전략을 다시 재현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전형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은, 서방의 감성적 헤드라인의 ‘비극의 상징물’이 아닌, 그들의 생존과 존엄을 진정으로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진실을 말해야 하며, 그것도 담대히 말해야 한다. 이 담대함은 언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용기를 의미한다.
만일 어떤 지도자들이 도덕적 명확성과 정직성을 갖고 말할 수 없다면, 혹은 자신들이 악의적 세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음을 의심한다면, 차라리 침묵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특히 가자 전쟁에서 어느 한 쪽만 비판함으로써 과연 민간인의 안전이 향상되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는지를 숙고해야 한다.
교회는 또한 팔레스타인 그리스도인 문제에만 거의 전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이 지역 그리스도인 전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찰해야 한다. 이는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심화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으며, ‘디미’ 체제와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해야 할 때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위협에서 가족과 공동체, 성전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 결과 자유를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이다. 바로 지난 목요일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