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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32 |
북한 선전매체 조선신보는 2025년 7월 26일 자 기사에서 ‘1211고지 방위자들이 남긴 맹세문’을 소개하며, 이를 “수령께 다진 맹세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새겨주는 교본”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는 전쟁의 참혹함을 감추고, 군인들의 고통과 죽음을 체제 충성의 도구로 소비하는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는다.
1211고지는 조국해방전쟁(6·25 전쟁) 당시 중부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전략 고지 중 하나다.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사실상 피로 얼룩진 소모전이었다. 남한과 유엔군, 그리고 북한과 중공군은 각각 수많은 젊은이들을 그곳에 몰아넣었고, 수천 명의 생명이 이유도 없이 스러졌다.
조선신보는 전투 당시 병사들이 남겼다는 맹세문을 극적으로 소개하며, “한 mm도 내주지 말자”, “수령님과 조국 앞에 충실할 것” 등의 문구를 부각시켰다.
이는 마치 병사들이 자발적이고 의식적인 신념에 따라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서술하지만, 실제로는 철저한 세뇌와 감시, 도피 불가능한 전시 상황 속에서 강요된 충성이었다는 점을 외면한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 같은 “영웅적 희생”을 체제 유지의 자산으로 활용해 왔다.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나 가족들의 고통은 철저히 배제되고, 오로지 충성과 전투 정신만이 기념되고 재생산된다. 맹세문이 “포연에 그슬린” 문서라면, 그것은 문학적 상징이 아니라 당시 전장의 비참함과 잔혹함을 반증하는 물증이어야 마땅하다.
북한은 매년 7월 전승절(정전협정일)을 맞아 ‘영웅 고지’와 ‘결사대 정신’을 반복적으로 선전한다. 이는 내부 결속과 외부 적개심 조장을 위한 도구일 뿐, 평화를 위한 반성과 대화의 계기가 아니다.
특히 2025년 현재, 핵무기 개발과 국경 폐쇄로 고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북한 정권은 과거의 전쟁 신화를 재소환하여 ‘위기 속 결속’을 강요하고 있다.
진정한 기념은, 억지로 남긴 맹세문이 아니라 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희생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1211고지에 묻힌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경의일 것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