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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공 |
러시아군의 침략전쟁 최전선에 중국인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투하오레이(屠浩雷).
관광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무기를 들고 싸웠던 그는, 살아 돌아왔지만 전쟁터에 버려진 전우들의 시신만큼이나 냉소적인 교훈을 안고 고향 땅을 밟았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 뒤에는, 총성보다 깊은 침묵이 흐른다.
“중국 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경찰이 불렀다.”
투하오레이는 귀국 후, 열 차례 이상 중국 공안과 국가안전부의 조사를 받았다. 휴대전화의 데이터는 물론이고, 은행 계좌와 통화기록까지 들여다보였다.
그들이 주목한 건 ‘외국 무장세력과의 연계 여부’였다. 그러나 명확한 법적 금지조항이 없는 현실 속에서 그를 기소할 근거는 없었다.
외교부는 우크라이나가 공개한 중국 용병 문제에 대해 “정치적 조작”이라며 반발했지만, 정작 자국민의 생사 문제에 대해선 침묵을 선택했다.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 전쟁경제의 가장 큰 우군이다. 베이징의 입장은 명확하다. “이 전쟁은 불법이 아니다.”
“우린 죽으러 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은 중국 용병 155명을 파악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네팔인과 중앙아시아계 용병들 속에 섞여 있었다.
소총은 실전에선 거의 쓸모없고, 모든 작전은 드론과 포병에 좌우된다. 번역기 앱을 켜서 명령어 몇 개만 주고받은 채, 전진하다가 수백 미터도 못 가 수십 명이 전사했다.
“우린 적의 땅에 들어가면 철수는 없다. 무의미한 죽음뿐이었다.”
그는 전우 30명의 시신을 건너야 했다고 회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드론에게 발각돼 9시간 동안 가시덤불 속에서 엎드린 하루다. “그날, 나는 죽을 줄 알았다.”
“러시아 지휘관이 카자흐스탄 용병을 쏴 죽였다.”
물자는 항상 부족했다. 트럭은 소리가 커서 전선으로 가길 거부하는 운전병도 많았다. 분노한 카자흐 용병이 무기를 들자, 지휘관은 지체 없이 권총을 꺼내 그를 쏴 죽였다.
“지휘관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 순간, 인간 생명의 무게는 깃털 같았다.”
투하오레이는 한 달 2만 위안(약 380만 원)을 받았지만, 루블 평가절하와 송금 지연으로 실제 수령액은 점점 줄었다. 오른쪽 귀의 청력은 영구 손상됐고, 현재 실직 상태다.
“살아 돌아온 게 신기할 뿐이다. 더는 앞으로 나아갈 의욕이 없다.”
“이 전쟁, 러시아에게도 가치 없다.”
중국 용병으로 싸운 그는 지금 묻는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는 단언한다. “설사 이기더라도, 값비싼 승리일 것이다.”
중국은 자국민이 러시아 용병으로 참전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후 받는 것은 보훈도, 명예도 아닌 의심과 단속뿐이다.
전쟁의 대가는 전장에서만 치러지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 서서히 흘러가는 삶, 그것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현실이다.
“전쟁은 숫자이고 명령이었다. 나는 더 이상 숫자가 되고 싶지 않다.” – 투하오레이
장·춘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