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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중앙통신 34 |
북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7월 27일 전승절을 즈음해 발표한 담화문은 표면적으로는 기존 대남 강경노선을 재확인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북한의 외교 전략 재조정 가능성을 타진하는 신호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김여정은 이번 담화에서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며, 남북관계를 사실상 '국가 대 국가의 적대관계'로 못 박았다.
또한, 통일부 해체를 주장하며 통일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과거 ‘우리 민족끼리’의 민족 공동체 담론과는 전면적으로 결별한 것으로, 작년 김정은의 지시로 헌법 조항과 '조국3대헌장'등의 폐기 등 북한이 스스로 ‘한민족’ 프레임을 철회했던 사안들을 다시금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은 김여정의 담화문에 흐르는 모호한 계산법과 전략적 여백이다.
"한국이 반미로 선회하면 고려해볼 수도"라는 메시지?
김여정은 담화 초입에서 이재명 정부의 "성의 있는 노력"을 일일이 나열하며 나름의 관심을 표명했다. 확성기 방송 중단, 전단살포 금지, 개별관광 허용 검토 등은 "진작에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일축하면서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화 제안을 언급하는 방식은 묘하게 길을 열어둔 형태다.
이는 한국이 대미정책에서 일정한 변화를 보일 경우 북한이 남북관계의 성격을 ‘잠정적으로’ 재조정할 여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즉, 현재 조한관계를 ‘대적관계’로 규정하면서도, 한국이 미국과 거리를 두거나, 반미 블록 형성에 모종의 기류를 보일 경우 러시아·중국과 함께 ‘반미 삼각연대’의 정치적 공간을 넓힐 가능성을 떠보는 것이다.
‘동족’은 버렸지만, ‘지정학’은 남았다
김여정은 한국의 정권 교체에 "개의치 않았다"고 하면서도, 유독 이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의 변화와 메시지를 이례적으로 장황하게 나열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남한 정부가 대미노선에 있어 과거 보수정권과는 다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주시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즉, ‘동족’이라는 민족주의 담론은 폐기했지만, 남북관계가 국제질서 재편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지정학적 계산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정치적 유대관계를 복원하고 있는 맥락과 연결된다.
김여정은 또한 담화에서 통일부를 "해체되어야 할 조직"이라고 지목하며, "흡수통일 망령에 사로잡힌 한국 정객들의 본색"을 부각시켰다. 이는 한국 내 진보·보수 진영 간의 통일관의 차이를 의식하고, 대남여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심리전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북한은 과거에도 보수정권 시기에는 민주주의와 민족화해를 내세워 진보진영을 자극했고, 진보정권 시기에는 '굴욕외교' 혹은 '미제의 앞잡이'라는 표현으로 비난 수위를 조절하며 내부 갈등을 유도해왔다.
이번 담화 또한 통일부 해체론을 꺼내며 한국 내부에서의 통일담론을 해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다.
북한은 지금 열심히 부채질 중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외형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대한 전면적 단절을 선언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대미 스탠스를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으며, 국제적 반미 전선의 확장 가능성 속에서 남한의 입장을 시험하는 전략적 담화로 해석된다.
‘동족’을 버리고 ‘적국’을 선언한 북한의 언사 뒤에는 “그러나 반미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정학적 유인 전략이 숨어 있다. 김여정의 담화는 절연의 언어로 위장된 탐색적 제안이자, 반미 국제 연대 구축을 위한 심리적 선전포고일 수 있다.
남북관계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선의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그리고 그 축은 ‘민족’이 아니라 ‘미국’이다.
김·성·일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