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미국 주류 개신교회를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인터뷰했다면, 대화는 아마도 이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어떻게 영적으로 파산하게 되었습니까?” “두 단계로요. 천천히, 그리고 갑자기.”
오늘날 우리는 그 두 번째, 곧 ‘갑작스러운’ 파산의 시점에 접어들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 장로교(PCUSA)는 올해 자국 외 선교기관을 폐쇄했다. 이는 이 교단이 겪고 있는 재정적 곤궁을 드러내는 신호일 뿐 아니라, PCUSA 내부에 뿌리내린 종교다원주의가 초래한 선교에 대한 주저와 회피가 논리적으로 귀결된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Spectator World’ 8월호에 실린 크리스 몬딕스의 기사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의 각종 제도—특히 신학교들—이 어떻게 진보주의에 의해 텅 비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몰락은 참으로 갑작스러웠다. 나는 필라델피아 루터 신학대학 근처에서 수년간 일하며 교수들과 돈독한 친분을 맺었고, 박사과정 외부 심사위원으로도 봉사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그 신학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몬딕스는 그 후신인 연합루터신학대학(United Lutheran Seminary) 이사로 7년간 재직했다. 그의 직접적인 증언은 슬프지만 예견된 바였으며, 해당 학교가 세속의 진보 정치에 지나치게 헌신한 나머지 신학적 무관성으로 끌려 들어간 과정을 보여준다. 미국 장로교나 복음 루터교회 모두 토지와 기금 등 자산은 풍부할지 모르나, 자유낙하하는 신자 수는 교회가 사람뿐 아니라 신앙으로도 텅 비게 될 미래를 예고한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파산은 사실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진행된 것이다. 주류 개신교는 오래전에 그리스도교의 초월적 진리에 대한 관심을 잃고 시대 정신과 ‘혼인’을 선택했다. 20세기 전반기에 그것은 반공주의의 수단이 되었으며,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보수 우파 정치의 시녀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러나 1960년대 시민권 운동을 계기로 급진적으로 좌향했고, 이후로 줄곧 진보적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 전역의 수많은 교회 간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년 전, 나는 지역의 연합감리교회에서 혼인성사를 주례한 적이 있다. 그 교회는 무지개 깃발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나에게 “이 교회는 노아의 이야기를 특별히 좋아하나요?”라고 물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으련만. 적어도 그랬다면 시내의 다른 프라이드 깃발을 내건 기업들과는 구별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 교회는 복음의 예언자적 증언을 세상에 전하려 하기보다는, 시대정신의 미덕 시위에 굴복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자 했다. 교회는 세상과의 ‘다름’을 자랑하기보다는 ‘같음’을 자랑했다. 세상에 영합하려 한 결과, 스스로의 무관성을 선언해 버린 셈이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교회에서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세속 정치의 언어를 종교적 어휘로 옮기는 법만 배우기 위해 신학교에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몬딕스의 분석에는 중요한 하나의 맹점이 있다. 그는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핵심 문제를 ‘강단과 신자석 사이의 단절’로 본다. 교회의 지도층이 주일마다 십일조를 내는 신자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심지어 그들의 염려를 경멸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는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와 지배층의 고립은 교회 안에서도 투표함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누가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가겠는가? 매주 강론단에서 “나는 트럼프에 투표한 저런 자들과는 다르다”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성직자를 만나기 위해?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단지 목회자들이 신자들의 정치 성향에 더 민감해지면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신자석을 ‘달래는’ 것도 세속에 영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1960년대 이전 주류 교회가 보수 정치와 맺었던 동맹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고, 그렇게 한다 한들 문제의 핵심은 그대로 남는다. 말하자면 “같은 말, 기수만 바뀐 셈”이라는 것이다.
ELCA의 진정한 문제는 교회 고유의 이상과 사명을 상실한 데 있다. 교회는 ‘육화하신 그리스도의 생애, 수난, 죽음, 부활을 통한 구원의 신비’를 세속 문명에 맞서는 초자연적 메시지로 선포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이솝 우화와 같은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모든 시간적·세속적 현실들을 판단하게 될 ‘궁극적이며 영원한 실재’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미국 장로교가 해외 선교기관을 폐쇄한 결정에 대해, 정통 장로교 교단(OPC)의 기관지 ‘New Horizons’의 편집장 대니 올링거는 교회의 사명을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증언하는 것이다. 교회의 임무는 전 세계의 비기독교적 전통들과 협력하는 데 있지 않다. 교회의 임무는 미국 정치의 대안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명령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제자를 삼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며, 주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마태 28,19-20).”
올링거가 이 말을 주류 교회가 아닌 정통 교단을 향해 썼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주류 개신교는 이미 수십 년 전 그 사명에 대한 이해를 상실했다. 그들의 파산은 한때는 점진적이었으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고조되고, 공적 담론의 수사학이 극단화되는 오늘의 시대에, 이러한 사명을 망각하려는 유혹은 모든 교회에 강하게 작용한다. 이 점에서, 이 글은 외형상 정통을 지니고 있는 교회들에게도 분명한 경고가 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