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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39 |
조선신보를 통해 연재하는 류학동(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 ‘80년의 궤적’ 시리즈는 표면상 재일조선인 학생들의 역사와 문화 활동을 조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1970년대의 활동을 다룬 세 번째 기사에서는 한 편의 연극 「침묵」을 중심으로 ‘재일스파이단사건’을 어떻게 왜곡되고 정치적으로 활용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창작극 「침묵」은 박정희 정권 하 한국의 안보조치와 간첩사건을 ‘야수적인 탄압’으로 규정하며, 연극을 통해 일본 내 여론을 조직적으로 선동하는 데 사용되었다.
특히 “간첩 혐의로 고문받고 사형당한 학생”이라는 설정은 실제 간첩행위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은 이들에 대한 맥락과 사실을 고의로 생략한 채, 일방적인 희생자 서사로 포장된다. 이는 연극의 이름처럼 ‘침묵’이 아니라, 체제를 미화하고 상대를 악마화하는 ‘선전’에 불과하다.
정치극으로 왜곡된 희생 서사
「침묵」의 주인공 영철은 한국 유학 후 간첩으로 몰리고 고문당해 민족의식을 고양한다는 설정으로, 결국 사형 판결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이는 고통받는 자의 윤리적 성숙이라는 식의 고전적 서사 구조를 빌렸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정치적 선전에 봉사하는 연출일 뿐이다.
간첩 사건과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은 마치 당시 한국이 독재정권이기 때문에 모든 체포가 부당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는 한국의 내부 현실과 제도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재일조선인을 단일한 정치적 희생자 집단으로 고정시킨다.
이 연극은 단순한 문화 예술이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체제의 대외선전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정치극’이다.
특히 “우리 민족의 비극의 원흉과 싸우는 것이 필연적 길”이라는 대사는 북한 정권의 대남투쟁 논리를 재일동포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이념 주입의 전형이다. 이 연극이 전국 각지에서 반복 상연되었다는 점은 단순한 창작의 결과물이 아니라, 치밀한 정치 교육 프로그램이었다는 반증이다.
‘류학(遊學)’은 자유였는가
류학동은 “한국 유학을 선택한 영철”을 민족의식의 상징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당시 실제 한국 유학생 중 다수는 조총련과 북한과의 연계로 인해 반공법에 따라 조사를 받았으며, 일부는 실제 간첩 활동과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신보와 류학동은 이런 복잡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모든 사건을 “박정희의 군사독재와 반민족적 억압”으로 규정한다. 이는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이분법적 역사 인식이다.
기사는 “자신과 전혀 다른 배경의 인물을 형상하면서 참된 삶에 대해 생각을 깊여나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연극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이념에 맞춰 사고하고 감정을 재구성하도록 유도한 프로그램이었다.
배우 개인의 고뇌와 갈등이 아니라, 전체주의 체제가 승인한 ‘올바른 감정’만이 무대 위에서 허용되었다.
미화된 80년, 외면된 진실
류학동의 80년을 자축하는 이 연재물은 ‘민족’, ‘자주’, ‘해방’이라는 단어들로 가득하지만, 실제로는 한 정권의 시각에 철저히 경도된 사상 동원 과정의 기록이다.
특히 1970년대의 연극 활동은 예술적 자유나 표현의 다양성보다는, 북한의 이념 선전 도구로서 기능한 정치 연극에 불과했다.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오히려 오늘날의 젊은 재일동포들에게 왜곡된 정체성과 잘못된 방향성을 심어줄 위험이 크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