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76] 미국인으로서의 자부심?
  • 크리스토퍼 파 Christopher Parr is special projects manager for Prof. Robert P. George at the Witherspoon Institute. 프로젝트 매니저

  •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여러분은 지역 퍼레이드에 참여했을지도 모릅니다. 저와 같은 경우였다면, 빈티지 자동차, 자전거를 탄 어린이들, 긴급차량들, 다양한 형태의 성조기와 의상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이런 퍼레이드는 노먼 록웰의 화폭처럼, 애국심이 우리에게 불러일으켜야 할 감정, 곧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나라’에 대한 감사와 봉사의 자세를 상기시켜 줍니다—인종과 민족, 종교, 정치적 신념을 초월한 ‘공화국’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7월 4일의 퍼레이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애국심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대해 “매우” 혹은 “상당히” 자부심을 느낀다고 응답한 이들이 전체의 58%에 불과하며, 이는 2001년 조사 시작 이후 최저치입니다. 이 하락세는 미국의 방향성에 대한 비관적 전망(긍정 응답 33%)과 관련이 있지만, 정당 소속과 시간에 따른 추이를 들여다보면 더 깊은 문제가 드러납니다.

    올해 민주당 지지자 중 “매우” 또는 “상당히” 미국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응답은 36%로, 작년의 62%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이 수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이래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반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에는 민주당 지지자의 최대 85%가 “매우 자랑스럽다”고 답했습니다. 공화당 지지자의 애국심 지표는 지속적으로 더 높지만, 오바마 행정부 이후 백악관에 어느 정당이 집권했는지에 따라 뚜렷한 등락을 보였습니다.

    정당에 따라 연방정부의 정책이 개인의 신념과 일치할 때는 국가에 대한 낙관을 품고, 반대일 경우에는 비관에 빠지는 경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급격한 상승과 하락은 단순한 정책 차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에게 애국심은 ‘정권 유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사랑은 이러한 일시적 권위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1758년 스위스 외교관 에메르 드 바텔(Emer de Vattel)은 그의 저서 『국가법(Law of Nations)』에서 정치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가 시민이 공동선을 위해 자신들의 재능을 활용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민의 적극적인 사회 및 경제 참여는 조국을 향한 자연적 애정을 고양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조국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열정과 충성심, 용기로 섬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중요한 전제를 덧붙였습니다. 이러한 애국적 행위는 ‘자유로운 사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시민의 조국 사랑이 특정 인물에게만 향하게 되면, 그것은 곧 메말라버릴 것입니다.

    제국 통치하의 유럽 상황은 오늘날 미국과는 다르지만, 그의 핵심 주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곧, 특정 인물이나 정당에 대한 애착은 불안정한 애국심의 토대이며, 우리는 이러한 애국심을 통해 동포 시민들의 선익을 위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미국 체제에서 애국심은 왕조나 강력한 행정부에 의해 자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헌법의 원칙, 그리고 지역 공동체, 가정, 학교, 종교 공동체 안에서 이웃과 함께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권리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선의로 나라를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미국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그들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백악관이나 연방의회, 주지사 관저에 누가 있든지 간에, 우리는 조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녀야 하며, 자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우선, 미국의 헌정 체제는 동포 시민들 간의 공동선과 그 실현 방법에 대한 불가피한 의견 차이를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유발 레빈(Yuval Levin)은 최근 저서 『아메리칸 협약(American Covenant)』에서, 미국인이 실질적인 의견 차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체제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이 체제가 올바로 작동할 때, 시민들—특히 워싱턴의 대표자들—은 협력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그 체제에 참여함으로써 애국심을 실천합니다. 즉, 최선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헌법적 절차를 통해 공동선을 지향하는 정책을 지지하며, 정치적 반대자들과도 시민 우정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미국의 여러 명문 대학에서 새롭게 생겨난 ‘공적 사유 학교(Civic Thought Schools)’들은 보수, 진보, 중도 성향의 학생들에게 공적 삶에서 협력하는 데 필요한 습관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대학 전반에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시민성과 정치 참여 수업에 몰리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이 단순한 당파 초월의 수사학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이들을 정치 공동체의 정당한 일원으로 이해하려는 ‘공동선의 우애’를 배울 것이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정치 영역을 넘어, 우리 시민사회 전반의 여러 제도들이 쇠퇴를 겪고 있으며, 그 재건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들은 우리를 지상의 가치 너머로 인도하며, 창조 질서 안에서 어떻게 선익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또한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루며, 우리가 덕성과 봉사 안에서 성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리입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기관들 안에서도 우리는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과 협력할 기회를 풍성히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지 가능성이 아니라, 우리에게 요구되는 책무입니다.

    우리는 연중 특정한 시기를 정하여, 조국이 준 자유의 은총에 감사하며, 우리 각자의 자유를 어떻게 선익을 위한 행동으로 전환시키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바텔이 권고한 바와 같이 말입니다. 메모리얼 데이, 성조기 날, 독립기념일, 노동절 등 여름철의 국가 공휴일은 그러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줍니다.

    미국이 여러 어려움과 오해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헌법 체제는 여전히 작동 중이며, 우리는 여전히 신앙 공동체, 가정, 지역사회라는 기반 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기반 안에서 봉사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조국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 하나입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8-05 07:07]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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