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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42 |
8월 4일, 조선신보는 히로시마에서 열린 ‘조선반도출신 원폭피해자 추도모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 행사의 내용과 맥락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진정한 위령행사인지, 아니면 정치선전에 불과한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 “추도”라는 이름의 정치적 수사
이번 행사는 겉으로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희생된 조선인 피해자를 기리는 자리였다. 그러나 실상은 북한 총련과 그 하부단체인 ‘조피협’이 미국과 일본을 향한 정치적 공세의 무대로 활용한 행사에 불과하다.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에 대한 책임 추궁”, “일본의 사죄와 배상”, “과거청산 완결”이라는 일련의 발언은 위령과는 거리가 먼, 이념적 프로파간다의 전형적인 수사다.
정말로 조선인 희생자들의 고통과 죽음을 기리고자 했다면, 반세기 동안 이를 외면했던 북한 당국과 총련은 왜 지금에서야 처음 추도회를 여는가?
더욱이 히로시마 현지의 조선인 피해자 공동체조차 추도비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운동이 단지 정치적 명분만 반복하며 실제 피해자들의 존엄 회복에는 무관심했음을 시사한다.
조선신보가 강조한 것은 ‘조선사람들이 미국 원자탄에 희생되었다’는 일방적 피해서사다. 그러나 이들의 피폭은 일제 강제징용이라는 역사적 구조 속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복합적인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복합성을 외면하고, 모든 원인을 “미국 탓”, “일본 탓”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조선신보 특유의 선동적 내러티브로, “조선사람들은 해방 며칠 전 미국의 원자탄 세례로 무주고혼이 되었다”는 식의 표현은 피해자의 고통을 정략적으로 도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피폭자 후손들, ‘도구’가 아니라 ‘주체’로 존중받아야
정작 피해자 유족이나 후손들의 실질적 목소리는 이번 기사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조피협 권현기 씨가 “새세대로서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내용 역시 구체적인 피해자 복지 개선이나 지역사회 협력의 방향보다는, “추도비 건립”과 “정치적 결의”에 방점을 두고 있다.
정말로 조선인 피폭자를 기리려 한다면, 진정 필요한 것은 도발적인 외교 레토릭이 아니라, 일본 사회 속에서 소외된 재일조선인 피해자 후손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노력이다.
아울러 피해자 개개인의 생애와 증언을 기록하고, 이를 보편적인 반핵·인권 담론 속에 통합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80년 만의 추도행사라는 상징성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념에 휘둘리고 정치적 선전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희생자들의 죽음은 또다시 ‘이용’되는 것이다.
진정한 추모는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되, 그것을 미래 세대를 위한 화해와 평화의 토대로 삼는 것이다. 조선신보가 보여준 이번 추도행사는 그 본질에서 그러한 길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