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77] 시드니 스위니와 진정한 우생학*의 위협
  • 존 M. 그론델스키 is former associate dean of the School of Theology at Seton Hall University, South Orange, New Jersey, and a retired foreign service officer. All views are his own. 전직 외교관, 신학대학 교수

  •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이 배우 시드니 스위니(Sydney Sweeney)를 내세운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며 사회관계망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광고에서는 ‘great jeans/genes(좋은 청바지/우수한 유전자)’라는 말장난을 사용했는데,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매력적인 여성이 도발적인 포즈로 청바지를 홍보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미국식 광고다. 성적 매력을 상품 판매에 이용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한때 이러한 광고에 반기를 들던 이들은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다고 비판하던 급진 페미니스트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비판자’들은 이중적 의미 자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은 ‘genes(유전자)’라는 단어의 사용이 미국을 아리아인 중심의 백인우월주의 사회로 이끌기 위한 우생학(eugenics 인간의 유전형질 가운데 우수한 것을 선별, 개량하여 인류 전반의 유전적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는 유사과학) 코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우생학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작 진정한 우생학의 실상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낙태 기업인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은 명백히 인종주의적이고 우생학적 신념을 가진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런데도 매사추세츠주의 한 판사는 연방의회의 지원 중단에도 불구하고 낙태 산업에 계속해서 공적 자금이 흘러가도록 헌법을 억지로 왜곡해가며 보호하고 있다.

    현대의 낙태 교의(orthodoxy)는 낙태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이유로든 결코 문제 삼아져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기에는 여성 태아가 대부분 희생되는 ‘성 선택 낙태’도 포함된다. 최근 《이코노미스트》는 선호 성별에 따라 이뤄지는 낙태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지만, 정독해 보면 이는 인간 생명 고유의 성스러움(sacredness)을 새롭게 인식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엘리트 문화에서 ‘독성 남성성(여성, 동성애 혐오 등)’에 대한 반감이 이제 교육이 힘든 남자아이들에게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슷하게도, 미국의 주요 장애인 인권 단체들은 출생 이후의 장애인 권익을 위한 문화 개선에는 기여했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태아 생명권에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미국 내 장애인 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장애를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을 제거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현대 의학의 산전 진단 기술은 출생 전 수색 및 제거 작전에 매우 능숙해졌으며, 다수의 미국인들은 태아 장애를 이유로 한 낙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묵인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최근까지 태아 기형 시 낙태를 허용하던 공산 정권 시절 법률을 헌법재판소가 폐기한 이후, 폴란드에서 낙태를 둘러싼 격렬한 갈등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기형의 가능성’이라는 의학적 진단이 실상 정상적인 건강한 신생아의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이러한 판단에 있어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이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미국 대법원의 ‘Doe v. Bolton’ 판례에서 ‘건강’이라는 개념이 무한 확장 가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19년 ‘Box v. Planned Parenthood’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인디애나주의 성 선택 낙태 금지법에 대한 판단을 피했지만,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이 사안에 대해 긴 보충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미국 법체계 속 우생학의 악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며, 성 선택 낙태를 명백한 ‘우생학적 낙태’라고 지적했다.

    이 의견은 ‘선택권’을 주장하는 진영은 물론, 심지어 ‘反우생학’ 도서를 집필한 이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 이들의 논리는 국가가 강제할 때만이 ‘우생학’이며, 개인이 사적으로 우생학적 동기에 따라 행동할 경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인공생식과 맞춤형 출산의 시대, 즉 자녀의 성별, 머리카락·눈 색깔, 체형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난자를 구매해 ‘두뇌 우위’를 얻고 싶다면? 돈만 있으면 문제없다.

    뿐만 아니라, 오버게펠 판결로 인해 왜곡된 ‘결혼’의 개념이 지속적으로 존속되면서, 오늘날에는 출산이 생물학적 관계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서는 당연히 출산 자체만이 아니라, 출산될 아이의 특성까지도 선택의 대상이 된다.

    파리 대교구 전 대주교 미셸 오페티(Michel Aupetit)가 언급한 대로, ‘부모의 프로젝트’로서의 출산은 자녀를 선물(gift) 이 아니라 상품(product)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상품은 품질 기준에 미달하면 폐기될 수 있다.

    문제는 단지 태아 생명에만 그치지 않는다. 버지니아 주 전 주지사 랄프 노덤(Ralph Northam)은 2019년에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는 말기 낙태 후 살아남은 신생아가 헌법상 생명권을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의사로서, 그러한 아이의 생명은 부모와 의료진 간의 ‘논의’를 거쳐 ‘편안한 돌봄(comfort care)’ 속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장애아동의 경우 이러한 방식으로 비밀리에 사망에 이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는 ‘로 대 웨이드’ 판결 이전은 물론, 1982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베이비 도우(Baby Doe)를 방치로부터 구하려 했던 시절부터 이어지는 오래된 은폐된 진실이다.

    시드니 스위니의 광고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왜곡해 버린 우생학 개념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제는 국가뿐 아니라 개인 외 모든 집단이 ‘미적 기준’이나 ‘우수한 유전자’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따라서 아메리칸 이글이나, 최근 ‘갈색 도넛’ 광고로 비판받은 던킨 도넛조차, 백인 배우를 광고에 기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중 인식 형성에 공모하거나, 국가와 결탁해 우생학적 이상을 홍보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오늘날 우생학은 미국에서 여전히 활발히 작동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장 크게 소리치는 자들이 말하는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뿐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8-05 22:38]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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