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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조선신보 44 |
일본 조선신보에 게재된 「우리 말선생님」 기사는 언뜻 보기에는 고인이 된 박재수 조선대학교 교수의 국어 사랑을 기리는 문화 기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기사의 이면에는 북한 체제의 언어 민족주의와 조선총련식 정체성 강화 전략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
조용한 감동 서사 속에 체제 선전의 기능이 결합된 이 글은, 단순한 언어 추억담이 아니라 사상적 통제의 연장선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 언어사랑인가, 체제언어의 찬양인가?
박재수 교수의 유고집 출간과 그에 대한 애틋한 회고는 마치 '우리 말'에 대한 보편적 애정에서 출발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우리 말"은 단지 언어 그 자체가 아니라, 북한 정권이 규정한 ‘조선어’의 독점성과 우월성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 말의 매력을 구수한 우리 말로 써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라는 문장은, 일본 사회 내 조선총련 독자들에게 북한식 언어 체계를 정통성 있는 언어로 받아들이라는 은근한 강요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 말’은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표준어가 아닌, 정치적·이념적으로 필터링된 북한의 공식 언어체계이다.
■ 감성적 추모에 감춰진 이념 주입
이 기사에서 박 교수는 ‘언어학박사’이자 ‘문학력사학부 학부장’으로 소개되며, 학술적 권위를 바탕으로 언어의 본질을 탐구한 이로 추켜세워진다.
하지만 그가 조선신보에 연재한 시리즈의 제목들—「한글려행」, 「우리 말의 샘」, 「우리 말을 생각한다」—만 봐도, 이는 순수 언어학이 아니라 북한식 민족주의 언어관을 포장하고 전달하기 위한 전략적 연재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언어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독자들이 북한 체제가 규정한 ‘조선어’를 유일한 민족어로 수용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성을 띤다. 결국 ‘언어사랑’이라는 외피는, 이념적 일체화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 일본 내 ‘우리 민족’ 프레임의 함정
총련 계열 매체인 조선신보는 ‘조선대학교’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수’라는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이것은 일본 내 재일동포 사회에 북한 체제 중심의 민족 정체성을 주입하려는 오랜 선전의 틀을 다시 확인시키는 행위다.
더욱이 이러한 언어 선생님의 ‘유고집’ 발간이라는 형식을 통해, 감성적 공감대를 유도함으로써, 젊은 세대에게까지 비판적 사고를 우회하고 체제 동조를 정서적으로 주입하려는 목적이 엿보인다.
진정으로 ‘우리 말’을 사랑한다면, 언어의 다양성과 발전, 그리고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통제하며, 언어까지도 선전 도구로 전유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박재수 교수의 유고집이 진정한 언어학적 업적인지, 아니면 체제 유지를 위한 선동 자료인지는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 언어 감성의 탈을 쓴 체제 홍보
「우리 말선생님」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결국, 언어를 통해 이념을 주입하고, 감성적 추모를 통해 비판적 판단을 흐리려는 조선신보식 감성선동의 전형이다.
‘우리 말’이라는 단어가 순수한 언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언어를 강제하는 은폐된 통제 장치임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북한식 언어를 찬미하는 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자유와 다양성이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를 지향해야 할 때다.
박재수 교수의 글이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말’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언어는 결코 ‘북한 정권의 언어’에만 갇혀 있지는 않았어야 했다.
강·동·현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