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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캡쳐 - 노동신문 44 |
노동신문은 최근 TV연속극 《백학벌의 새봄》을 인용하며, 당 간부가 대중과 “언행을 일치”시키는 모범적 자세를 갖출 때 인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자 했다.
기사에서는 리당비서가 농장원들과 약속을 지켜 가족을 읍에서 농장으로 이사시키는 장면을 감동적인 사례로 소개하며,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당일군의 풍모야말로 대중교양의 중요한 인자”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가상의 드라마에 기반한 ‘이상화된 픽션’일 뿐이며, 현실의 북한 간부 사회는 정반대의 모습이라는 데 있다.
픽션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선전술
노동신문은 기사에서 드라마 속 주인공이 교육환경이 더 나은 읍을 떠나 가족과 함께 농장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선전용 감정 몰이일 뿐이다.
실제 북한에서 간부들이 특권을 포기하고 열악한 지방으로 자발적으로 이주한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위층 자녀들이 평양 내 최고 수준의 학교에 진학하고, 일반 주민들은 입시조차 시도할 기회가 없는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의 이상적 간부상을 드라마 속에 가둬 놓고 이를 현실인양 보도하는 것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분노와 피로감만을 안겨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불일치를 덮으려는 시도는 결국 체제에 대한 신뢰만 갉아먹는다.
'언행일치'의 강조, 실제론 내부 불신의 반증
기사가 집요하게 강조하는 ‘언행의 일치’는 오히려 간부 집단 내부의 불신과 이중성을 방증한다.
기사는 “말과 행동이 차이나는 그런 일군들이 대중의 신망 속에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하지만, 이는 현재 북한 내부에서 이런 부류의 간부가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또한 "대중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양심의 가책을 위안으로 달래는 간부들"이라는 표현은 체제의 통제된 언론치고는 이례적으로 수위가 높은 비판이다. 이는 내부적으로 간부들의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반영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강 해이가 단순한 ‘개인의 태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특권 체계와 비민주적 행정 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대중의 ‘감시’는 있지만 ‘참여’는 없다
기사는 “사람들은 보고 있다”는 문장으로 간부들이 대중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 감시란 실제로는 주민 통제의 수단일 뿐, 건강한 사회적 견제 장치로 기능하지 않는다.
진정한 민주사회에서는 지도자가 언행을 일치시키도록 만드는 힘은 감시보다는 참여에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인민의 정치 참여를 철저히 제한하고 있으며, 민의를 반영할 제도적 수단조차 없다.
결국, 기사에서 제시된 ‘당일군의 언행일치’는 자발적인 도덕심에만 의존하는 구조다. 제도적 감시나 견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이런 구조는 필연적으로 위선과 이중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노동신문이 반복적으로 전파하는 ‘이상적인 간부상’은 북한 사회의 현실과 괴리된 신화에 불과하다.
드라마를 통해 주민들에게 ‘희망적 모델’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 허위성과 간극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실제로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간부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진짜 변화’다.
지도층이 먼저 실천하지 않는 윤리 강요는 결국 공허한 설교로 남을 뿐이다.
김·도·윤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