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88] 더 많고, 더 깊이, 더 멀리
  • 프란시스 X. 마이어 is a senior fellow in Catholic Studies at the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and the author of True Confessions: Voices of Faith from a Life in the Church. 윤리·공공정책센터 선임 연구원

  •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제프리 콜린스(Jeffrey Collins)는 새 전기 『토머스 모어: 한 생애(Thomas More: A Life)』를 “모어 연구에 가치 있는 보탬”이라 평가하며, “매혹적인 인물의 삶과 그가 목숨 바쳐 지키려 했던, 사라져 가던 세계를 아름답게 담아냈다”고 평했다.

    저자인 영국의 방송인이자 역사 강연자인 조앤 폴(Joanne Paul)은 전문성과 문체의 균형을 훌륭히 이루어냈으며, 이는 오늘날 점점 드물어지는 장점이라고도 덧붙였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 서평은 매우 짧게 끝날 수도 있겠지만, 모어에 관해 말해야 할 것은 여전히 많다.

    종교개혁의 풍자와 진실

    우리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군가 시원한 웃음을 찾는다면 루터교 풍자(Lutheran Satire)라는 웹사이트를 추천한다. 이는 루터교 신학을 바탕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두루 풍자하는 날카로운 유머 영상을 선보인다. 그중 백미는 “종교개혁 편승자들(The Reformation PiggyBackers)”이라는 영상이다.

    무대는 1517년 독일 비텐베르크. 루터가 95개 조항을 성당 문에 게시한 직후다. 아침 식사를 가려는 루터 앞에 츠빙글리와 칼뱅이 차례로 나타난다. 둘 다 루터의 ‘위대한 사업’에 합류하길 원하지만, 동시에 루터와도, 서로 간에도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를 두고 격렬히 의견이 갈린다.

    이때 헨리 8세가 등장한다.
    “개혁이라고? 나도 끼고 싶군.” 놀란 루터가 묻는다.
    “교황의 신학적 오류를 깨닫고 충성을 거둔 건가?”

    헨리는 태연하게 답한다.
    “아니, 사실은 내 결혼을 무효화해주지 않아서지. 그 반쯤 불임에다 돼지 같은 얼굴을 한 스페인 여인과의 혼인을 말이야.”

    헨리는 루터에게 고맙다며, 영국의 ‘교회적 브렉시트’를 가능케 한 토대를 마련해주었다고 비꼬듯 말한다. 그리고 루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츠빙글리와 칼뱅을 이끌고 “프로테스탄트의 노래”를 합창한다.

    나는 그 영상을 수십 번 보았지만 질리지 않는다. 그만큼 영리한 풍자는 루터교 밖에서도 많은 이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실제 16세기의 신학적 혼란은 웃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독교 신앙 내부의 치열한 분열은 세계와 일상의 기반을 무너뜨렸고, 인류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결과를 짊어지고 산다. 그렇기에 종교개혁(보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개혁들’)과 그 시대의 주요 인물들은 여전히 연구와 논쟁의 중심이다.

    토머스 모어 : 신앙과 권력의 경계에 선 증인

    토머스 모어는 본래 법률가였으며, 철저히 가톨릭적 확신에 뿌리내린 인물이었다. 그는 탁월한 저술가였고,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깊은 친구였으며, 영국 초기 인문주의 지성계의 핵심 인물이었다. 헨리 8세의 신임을 얻어 왕의 고문관이 되었고, 루터의 초기 가르침에 맞서 『칠성사의 옹호(Defence of the Seven Sacraments)』를 집필하는 데 협력했다. 모어 자신도 격렬한 필치로 루터와 영국 가톨릭 공동체를 위협하는 이들에게 논박을 퍼부었다.

    마침내 그는 왕의 수상이 되었지만, 헨리의 캐서린 왕비와의 결혼 무효 및 앤 불린과의 재혼 문제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었다. 끝내 그는 교황과의 단절 및 왕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거부했고, 1535년 참수형을 당했다. 이는 그가 교황권에 대해 사적으로는 의문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로마와의 단절”을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모어는 인간 번개의 막대기처럼 다양한 해석을 불러왔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그의 『유토피아』를 사회주의의 선구적 환상으로 보아 1918년 모스크바 기념비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반면 초기 개신교인들에게 모어는 ‘로마주의적 우상숭배자이자 신실한 성경 신자들을 고문하고 불태운 악인’이었다. 결국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영국은 절충적 개혁주의로 굳어졌고, 모어에 대한 평가는 돌처럼 굳어졌다.

    교황 비오 5세는 1570년 엘리자베스를 파문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1579년 모어와 같은 시기 희생된 존 피셔 주교를 순교자로 인정했다. 두 사람은 레오 13세에 의해 1886년 시복되었으며, 비오 11세에 의해 1935년, 즉 순교 400주년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성인 : 거룩하되 불완전한 인간

    오늘날 어떤 평자들은 모어에게 여성 혐오, 위선, 억눌린 성적 욕망, 심지어 배설물에 대한 집착과 자기 혐오까지 덧씌운다. 이는 진부하고 피곤하며, 무엇보다 부당한 평가다. 세속주의가 공격적으로 지배하는 시대, 힐러리 맨틀의 『울프 홀』 속 모어의 추악한 형상은 ‘가톨릭을 떠난 이들의 독기’의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 토머스 모어(St. Thomas More)”라는 칭호가 지닌 의미를 성찰해야 한다. 영어 “saint”는 라틴어 ‘sanctus’에서, 다시 히브리어 ‘kadosh’(‘다른 것’, ‘구별됨’)에서 유래한다. 성덕은 세상과 다른 삶의 양식, 세상의 틀에 순응하지 않는 방식이다. 성인은 언제나 선하지만, 반드시 온순하거나 친절하거나 점잖지는 않다. 그리고 그들 역시 언제나 불완전하다. 성덕의 빛은 타락한 육신 속에 감싸여 드러난다.

    실상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성인들조차 그러하다. 교부 성 예로니모는 격렬한 성격으로 동료들과 끊임없이 싸웠고, “인도의 자비의 천사” 성녀 마더 데레사는 수년간 신앙의 어둔 밤을 겪었다. 모어 또한 실제 삶에서는 로버트 볼트의 희곡 『사계절의 사람(A Man for All Seasons)』 속 인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였다. 조앤 폴의 전기의 강점은 바로 이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공정히 탐구하려는 태도에 있다.

    그녀는 독자에게 보내는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모어를 신적 영감을 받은 성인으로 보든, 무고한 이들을 기소한 열광적 검사로 보든—이 책이 그 두 입장이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신화적 해석임을 보여주길 바라지만—우리는 그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권력 앞에서 진리를 말한 사람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모어가 이 세상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더 나은 세상, 곧 모든 이의 근본적 평등이 정치·사회 제도 안에 반영되고, 돈과 지위와 재산이 허상임이 드러나는 세상을 희망했다. 분열과 갈등을 막으려는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진리를 위해 삶을 바치고 또 생명을 내놓았다는 위로 속에 죽음을 맞았다.

    요약하자면, 조앤 폴은 현대 세속 역사학자가 쓸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토머스 모어 전기 가운데 하나를 내놓았다. 이미 피터 애크로이드(1998), 존 가이(2000), 그리고 가톨릭적 시각에서 저술한 제라드 베게머(Gerard Wegemer)의 훌륭한 연구가 있지만, 조앤 폴 역시 학문성과 문체 양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었다. 그녀의 책은 연구가 치밀하고 문체는 아름다우며, 오늘날의 세계를 형성한 그 시기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읽기 쉽게 쓰였다.

    오늘의 교훈

    나와 내 가족에게 토머스 모어는, 그리고 영원히, 영웅이다. 그의 절친 에라스무스가 처음 쓴 표현 그대로 “사계절의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루터교 풍자의 “종교개혁 편승자들”을 웃음과 함께 떠올린다. 그 웃음 속에는 자유가 있고, 나와 내 교회의 죄와 결함을 자각하는 겸허가 있다. 이는 오늘 우리의 순간을 희망적으로 해석하게 해준다.

    역사는 위대한 스승이다. 언젠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 그리고 우리의 작은 겸손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열정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는 증오 없이, 더 순수하고 더 용서하는 신앙으로..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8-17 06:59]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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