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는 거의 매주, 부활절이나 성탄절의 폐지, 오랜 전통의 철폐, 혹은 “모든 신앙과 무신앙”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철저히 중립적인 언어를 채택하는 등, 문화적 그리스도교의 외적 흔적들을 공적・사적 제도에서 제거하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행위는 언제나 소수 종교인들, 그중에서도 특히 무슬림을 포용한다는 미명 아래 행해진다.
그러나 과연 무슬림들이 실제로 그러한 포용을 가치 있게 여기거나 원하는가 하는 질문은 거의 제기되지 않는다. 탈(脫)그리스도교화를 추진하는 진보주의자들은, 공적 공간에서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줄어드는 것이 곧 무슬림들에게 더 환영받는 환경을 제공한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는 애초부터 문화적 그리스도교를 제거하려는 그들의 의도에 잘 맞아떨어지는 편리한 구실일 뿐, 실제 무슬림들의 의사를 성실히 반영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영국에서 실시된 여러 상세한 조사들에 따르면, 무슬림 공동체 안에는 물론 여러 사회적 쟁점들에서 우려스러운 태도를 지닌 이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적 그리스도교 자체에 대한 적대감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령,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 헨리 잭슨 소사이어티(Henry Jackson Society)의 연구는 다른 조사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종파적” 태도를 무슬림들 사이에서 보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국교회의 국교 지위를 폐지하길 원하는 무슬림은 1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영국 일반 국민(19%)보다 오히려 낮은 수치였다. 물론 무슬림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의견을 유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이 문제가 그리스도인들에게만큼 피부에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의 의미는 여전히 중요하다.
영국의 대표적인 다문화주의 이론가이자 무슬림인 타리크 모두드(Tariq Modood)는 국교회 제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무슬림 사회에서 그 제도에 본질적 반대를 제기하는 경우를 접한 적이 없다고 증언한다. 이는 전통적으로 무슬림들이 그리스도인과 유다인들을 “성서의 백성” 으로 존중해왔던 역사적 맥락과도 부합한다.
실제로 나는 서구 그리스도교의 쇠퇴를 깊이 애석하게 여기는 무슬림들을 많이 만났다. 나 자신도 무슬림으로서 같은 입장을 지닌다. 이는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아브라함의 전승, 인간의 고유한 존엄과 영적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공통 기반이 대화와 상호 이해의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들이 기독교적 전통을 대체하려는 세속주의는 그러한 자원을 전혀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종교학자 토비아스 크레머(Tobias Cremer)가 지적했듯, 유럽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 운동들은(물론 모든 점에서 틀린 것은 아니나, 무슬림을 포함한 종교적 자유를 침해하는 극단적 제한을 제시하기도 한다) 대체로 가장 비종교적인 집단, 즉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지금은 신앙을 버린 계층에서 더 강한 지지를 받는다.
이러한 맥락은 서구 내 무슬림 인구 증가, 나아가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이라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진보주의가 내세우는 무한한 자율성, 자의적 자기표현, 피상적 쾌락주의, 그리고 정체성 숭배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이슬람은 물론, 가톨릭적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와도 거의 아무런 도덕적 접점을 갖지 못한다. 진보주의자들의 무슬림에 대한 동정은 대체로 그들을 서구의 “원초적 피해자”로 상정하는 데 기반하지만, 실제 무슬림들이 원할 것은 그런 피해자 지위로부터의 해방이지, 그 안주가 아니다.
물론 일부 이슬람 전통 교설은 서구가 물려받은 관용과 다원주의 전통에 도전이 된다. 배교에 대한 처벌이나 타 종교 시민의 권리 박탈을 금하는 서구의 자유 전통은, 이슬람 소수와의 근본적인 신학적・정치철학적 대화를 요구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는, 무슬림들을 영원한 피해자로 감상적으로 대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슬람의 신앙적 헌신을 진지하게 공감할 수 있는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이다.
실제로 로버트 P. 조지(Robert P. George)와 같은 가톨릭 자연법 사상가는 무슬림 학자들과 종교 자유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그 자유가 무엇보다도 신앙 자체의 순수성과 내적 진실성을 위선과 맹목적 순응으로부터 지켜주려는 목적임을 확인한다. 반대로 전통에 뿌리를 두되 개혁에 열려 있는 온건한 무슬림 지식인들이 고(故) 로저 스크러튼(Sir Roger Scruton)과 같은 보수 사상가와도 대화를 이어왔다.
결국 무슬림과 세속 진보주의자들의 동맹은 기껏해야 전혀 다른 동기로 이뤄진 일시적 교차점일 뿐이고, 최악의 경우 서구 문화유산을 전복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무슬림들이 자동적으로 “우파의 자연스러운 동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이 문화적 그리스도교에 대해 보여주는 호감은 본질적인 진리를 일깨워 준다.
곧, ecumenical(교회 일치, 협력)하며 개방적인 종교 보수주의자들이야말로 이슬람 전통과의 진지하고 개혁 지향적인 대화에 가장 적합하며, 관용적 공적 그리스도교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그 대화를 훨씬 용이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