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91] 트랜스젠더도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 앤서니 R. 루스바르디, S.J. is the author of Baptism of Desire and Christian Salvation. 『욕망의 세례와 그리스도교적 구원』 저자

  • 오늘날은 가톨릭 사목자들에게 결코 쉬운 시기가 아니다. 권리의식이 팽배하고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트랜스젠더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2023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한 브라질 주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성별 정체성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도 “다른 신자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성사들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이 경우 “공적 스캔들 또는 신자들의 혼란을 야기할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다. 답변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세례가 유효함을 인정했지만, 수많은 사목적 쟁점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겨 두었다.

    세례의 유효성은 한 성사가 성사로서의 최소한의 정의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만 관련된다. 세례의 필수 요소는 단순하다. 물(질료)과 세례 공식(형식)이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세례를 준다”라는 세례 공식은 수혜자의 성별을 정확히 묘사하는 데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남성을 “여성”이라 부르거나 여성을 “남성”이라 부른다고 해서 성사의 유효성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수혜자의 자유로운 동의와 집전자의 의도 역시 유효성에 영향을 미친다. 성사를 유효하게 집전하기 위한 의도는 최소한으로 요구된다. 즉, 교회가 정의하는 세례 행위를 완수하려는 의도다. 세례를 베풀거나 받으려는 동기가 무엇이든(본당 통계를 늘리려 하거나 할머니를 기쁘게 하려는 이유 등), 필요한 의도는 단순히 “세례 행위를 행하려는 것”이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非그리스도인이라도 교회가 하는 것을 행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유효하게 세례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유효성 조건은 사목적 행위의 지침으로는 끔찍한 기준이다. 사악한 사제가 성체를 축성한 후 그것을 eBay(글로벌 마켓)에서 팔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해도 성체는 유효하지만, 그의 성사 모독 행위는 그와 연루된 이들의 영혼을 어둡게 만들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성사의 객관적 유효성은 주님께서 성육신 안에서 취하신 인간적 취약성을 반영한다. 더욱이, 전례의 일반 원칙(그리고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 cf. 마태 5:37)은 우리의 말이 표현하는 실재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해서는 안 되며, 특히 전례 안에서는 남성을 여성이라 부르거나 여성을 남성이라 부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성별 전환 수술을 받은 이들이 영원히 교회에서 배제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극단적 조치에 이른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성별 전환” 시도 안에는, 사실상 하느님의 은총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탄생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퀴나스 성인(St. Thomas Aquinas)이 성체에 관해 지적하듯, 어떤 약이 특정 상황에서는 생명을 살릴 수 있어도 잘못된 사람에게, 잘못된 시점이나 상황에서 주어진다면 무효하거나 심지어 해로울 수 있다. 성사가 사랑의 묘약처럼 우리의 의지와 준비 상태와 무관하게 자동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신이다. 성사는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객관적으로 현존하게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 행위에 동참할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성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켜 ‘그리스도처럼’ 살게 한다.

    준비되지 않았거나 복음의 요구에 따라 살려 하지 않는 이들에게 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사목자에게는 쉬운 길일 수 있으나, 수혜자에게는 결코 참된 은총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 탈퇴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이를 증명한다. 그렇게 되면 성사는 ‘열매 없는 표징’이자 복음에 대한 반증으로 전락한다. 게다가 유효한 세례는 의무를 수반한다. 적절한 준비 없이 그런 의무를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이러한 고려는 트랜스젠더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이는 사목자들이 그리스도인 입문 과정 전반을 더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이어받은 최소주의적 관행은 오늘날에는 더 이상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가장 근본적인 사목 지침은 그리스도인 성인 입문 예식(OCIA, 전 RCIA)에서 찾을 수 있다. 교리 입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안내자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회심(conversion)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오늘날 ‘LGBTQ(레즈비언(Lesbian),게이(Gay),양성애자(Bisexual),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또는 퀘스처닝 (Questioning)을 뜻하는 용어) 이데올로기’가 점점 하나의 ‘경합하는 종교 운동’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고유한 상징, 절기, 입문 예식, 사회 교리, 언어 규범, 정결 규범, 그리고 일종의 종교재판적 방법론까지 갖추고 있다. “성별 재지정”은 세례처럼 새로운 정체성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궁극적으로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의 목표는, 그 약어처럼, 끝없이 확장된다. 창조와 인간 본성에 대한 전제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의 전제들은 그리스도교 계시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

    그러나 LGBTQ 이데올로기를 따른 결과는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다. 설령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로 인해 영구적 육체적 손상을 입었다 해도, 교회의 눈에는 트랜스젠더도 다른 누구와 다름없이 복음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세례를 받겠다는 결정은 새로운 서약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무슬림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와도 같다. 새 신자가 여전히 트랜스젠더 생활방식과 상징을 고수한다면, 그것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은 결코 편견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이슬람에서 개종한 이가 성호경에 무함마드의 이름을 섞어 넣는 것과 같은 모순을 인식할 뿐이다.

    세례는 때때로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불리지만, 단순한 접근 지점 이상이다. 세례의 성경적 근본 이미지는 “거듭남”(요한 3,5)과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함”(로마 6,3–5)이다. 두 이미지는 모두 세례가 약속하고 선사하는 ‘새 생명’을 가리킨다. 새 생명은 언제나 옛 생명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입양된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단순히 인칭 대명사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심오하다. 세례의 수혜자가 이 새로운 삶의 은총을 누리려면, 모방적이거나 가짜 정체성은 반드시 씻겨 나가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8-19 20:59]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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