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로열(Robert Royal)과 나는 거의 40년 가까이 친구이자 동료, 그리고 협력자로 지내왔다.
로열 박사는 탁월한 언어학자이자 진지한 단테 연구자이며, 현대 가톨릭 지성사의 면밀한 탐구자이다. 그는 오랫동안 ‘The Catholic Thing’을 편집해왔는데, 내가 주저 없이 추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톨릭 웹사이트 가운데 하나다.
9·11 이전, 워싱턴이 무장 진영 같은 모습이 아니던 시절의 수많은 아름다운 여름 저녁마다, 우리는 윤리공공정책센터(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소프트볼 팀의 내야를 함께 지켰고, 내셔널 몰(National Mall) 한가운데, 워싱턴 기념비를 센터필드 삼아 경기를 하곤 했다.
물론, 로열 박사가 뉴욕 양키스와 뉴욕 자이언츠의 팬이라는 사실은 보통이라면 내 호감을 사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수퍼볼 XLII에서 다비드 타이리(David Tyree)의 기적 같은 ‘헬멧 캐치’로 자이언츠가 승리를 확정짓던 순간, 불과 10초 안에 “이스라엘에 하느님이 계시다!”라는 메시지를 엘리야 예언자처럼 내게 보냈고, 그 덕에 그는 평생의 관용을 얻었다.
2000년 대희년(Jubilaeum Magnum)을 앞두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신규 순교자 위원회(Commission on the New Martyrs)를 설립했다. 그 보고서는 20세기에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로 살해된 그리스도인의 수가, 그 이전 19세기의 순교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교황은 순교가 과거에만 머무른 사건이나 《The Robe》, 《Demetrius and the Gladiators》 같은 할리우드 영화 속 먼지가 쌓인 이야기로 국한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순교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있다. 교황은 당대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일이 성육신 2000주년을 기념하는 교회의 신앙을 강하게 할 것이라 희망했다.
로열 박사는 저서 『20세기 가톨릭 순교자들: 전 세계사적 박해』를 통해 이 희망의 성취에 탁월하게 기여했다. 이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독자들은 성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와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뿐 아니라, 스페인 내전의 순교자들, 공산주의 압제 하 중부·동유럽의 순교자들, 마오주의 중국의 순교자들, 멕시코 크리스테로 봉기의 순교자들까지 만나게 된다.
특히 지하 사도로 활동하던 복자 미겔 프로 예수회 신부는 “크리스토 레이 만세!”를 외치며 총살 직전의 모습이 역사상 처음으로 사진에 남겨진 순교자일지도 모른다. 어느 대륙도, 어느 시대도 20세기의 순교자 없이 지나가지 않았으며, 로열 박사의 저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교적 영웅담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금자탑과 같은 표준으로 남아 있다.
이제 로버트 로열은 『새 천년의 순교자들: 21세기 그리스도인에 대한 전 세계적 박해』를 통해 다시금 ‘증인들의 증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전 세계를 아우르며, 라틴아메리카,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서방에서조차 가톨릭 신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잔혹한 박해를 기록한다.
“중국의 백색(白色) 순교와 적색(赤色) 순교”라는 심도 있는 장은, 교황청 국무원(Secretariatus Status)이 언젠가 전임 교황의 대중국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자료다. 로열은 중국에서 국가승인 애국가톨릭협회와 지하교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음을 알 만큼 경험과 지혜가 깊다.
그러나 그 역시 교황청 외교관들처럼 명심해야 할 것은, 시진핑은 가톨릭 교회를 수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화’라는 미명하에 가톨릭 신앙에서 그리스도교적 본질을 비워내어 교회를 파괴하려는 자라는 점이다. 이에 의문이 있다면, 굴하지 않는 전 홍콩 교구장 진석현(요셉) 추기경의 증언을 참고하거나, 홍콩 스탠리 교도소에서 1,600일이 넘는 독방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지미 라이’의 증언을 깊이 숙고해야 한다.
성모 마리아의 순명 -“보십시오,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는 모든 그리스도인 제자의 기본적 모범을 설정했다. 순교자들은 이 모범을 가장 고귀한 차원에서 구현한다. 그들의 자기 봉헌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시며 당신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심으로써 부활을 드러내시고, 삼위일체의 빛과 사랑 안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우리의 궁극적 운명을 계시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적 희생에 가장 근접한 것이다.
로버트 로열이 이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 덕분에, 그는 전 세계 교회의 깊은 감사를 받을 만하다. 비록 그가 양키스 팬일지라도 말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