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가 신대륙 식민화와 미합중국의 형성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캘리포니아 선교지들, 청교도들이 추구한 종교 자유, 아브라함 링컨과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의 연설들, 노예제 폐지 운동과 인권운동, 월트 휘트먼의 시와 호손의 소설 등)
1984년에 발표된 잘 알려진 한 연구는 1760년에서 1805년 사이에 나온 900편 이상의 공적 정치 문헌을 검토하여 당대 담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원천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혀냈다. 그 결과 성경, 특히 신명기가 가장 많이 인용된 책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으며, 계몽주의, 위그 전통, 고전 사상가 전체를 합친 집단보다도 훨씬 앞섰다.
연구 저자는 “미국 정치사상에서 성경적 원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그것이 우리 정치 전통에 큰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정당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미국 시민학과 역사 기초 과정은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본질적 위치를 다루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AP(Advanced Placement, 대학선이수제) 미국 정부·정치 과정은 그렇지 않다. 200쪽에 달하는 교재 가이드라인은 해당 과목의 역량과 내용을 제시하면서도, 그리스도교나 성경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 건국을 고무한 지적 전통”을 다룬다고 주장하면서도 말이다. 종교에 관한 내용은 제1차 수정헌법 논의 속에서만 등장하는데, 거기서도 종교는 일반적이고 비역사적인 차원에서만 언급될 뿐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교적이거나 성경적인 것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
AP 미국사 과정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교과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연합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 ‘산업 자본주의의 부상’, ‘1960년대 청년 문화’와 같은 사건·주제·조건들이 연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무려 53개 항목 가운데 종교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단 하나, ‘제2차 대각성 운동’뿐이다. 이 목록만 보면, 토크빌(A. de Tocqueville)이 말했듯이 “그리스도교가 영혼 위에 가장 큰 힘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도, 노예제 폐지 운동과 인권운동이 철저히 그리스도교적 사명이었다는 사실도 전혀 알 길이 없다.
이는 역사적 직무유기이다. 그리스도교를 미국 유산에서 지워버리는 행위다. AP 역사와 시민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과거를 왜곡된 시각으로 배우게 되고, 종교적 국민을 세속주의적 국가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따로 묻지 않아도 된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은, 왜 그리스도교 학교들—특히 가톨릭 학교들—이 이런 “연성 과목들”의 AP 과정을 그대로 채택하느냐는 것이다. 왜 종교 교육 기관들이 학생들이 배워야 할 핵심 내용을 아예 배제해 버린 교재를 채택하는가? 칼리지보드(College Board)는 본질적으로 세속적이며, AP의 기준이 되는 엘리트 학계 역시 마찬가지다. (AP 과정은 본래 대학 1학년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AP 담당 고등학교 교사들이 일정 부분 자신만의 강의계획과 선호 교재를 선택할 자유는 있지만, 연말 시험에서 학생들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교과 가이드라인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가톨릭 고등학교들이 AP 과정을 개설해야 하는 현실도 이해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성취 지향적 학부모들은, 종종 정확하게, 엘리트 대학 입학이 AP 과목 이수와 시험 고득점 여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가톨릭 지도자들은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며칠 전 나는 ‘고전 학습 시험(Classic Learning Test, CLT)’이 바로 이 과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P만큼이나 엄격하면서도, 미국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교가 실제로 차지한 위치를 바로잡아주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과정을 만드는 일은 쉽다. 더 어려운 것은 공립·사립 대학들이 CLT 과정을 AP 수준 학점 인정 자격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이는 이미 SAT, ACT 대신 CLT를 학부 입학 전형으로 채택하도록 주(州)와 학교들을 설득해낸 CLT의 로비와 노력과 같은 방식으로 가능하다. 실제로 이미 그 성과가 있었다. 따라서 CLT 과정 역시 같은 결과를 낼 수 없을 이유가 없다.
이 과제는 차기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USCCB) 회의 안건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