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해왔다. 존경받는 베다 성인은 앵글로족의 복음화를 특별한 섭리적 사건으로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미리 아신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 하늘의 총애에 대한 인식은, 나라가 국왕 아래 통일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켄트의 중세 필사본 속 계보 기록에는, 알프레드 대왕을 노아의 후손으로 여겼다는 믿음까지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은 언제나 로마에 중심을 둔 신앙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잉글랜드의 운명에 대한 웅대한 주장조차도, 보편 교회 안에서의 위치를 의식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비옥한 가나안, 국왕은 솔로몬의 예형, 백성은 우상숭배를 뿌리 뽑도록 파견된 선택된 민족”과 같은 민족주의적 이미지들은, 상대적으로 무해하고 심지어 관습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과잉 팽창한 ‘영국 예외주의’를 낳았다. 이는 제국적 영광과 명성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순수성의 상실도 초래했다.
보스워스 전투와 튜더 왕조의 불안한 출발
모든 것이 바뀐 것은 540년 전 오늘이었다. 1485년 8월 22일, 헨리 튜더가 보스워스 전투에서 국왕군을 무찔렀다. 리처드 3세는 이미 왕자들의 살해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으로 요크 가문 내에서도 지지를 잃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헨리의 승리가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혈통적 주장은 빈약했는데, 에드워드 3세의 정부(情婦)를 통해 내려오는 방계 자손일 뿐이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망명과 은둔 속에서 보내며, 랭커스터 가문이 던지는 주사위를 기다려야 했다.
결국, 사실상 정통성이 없는 왕이, 밀베이 상륙 보름 만에, 적대 가문의 공주와 혼인하겠다는 약속을 몇몇 귀족들에게 내걸고 왕국을 차지했다. 살해되거나 폐위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이처럼 불안정한 출발은 튜더 왕조에 뿌리 깊은 불안과 강박을 남겼다. 권력의 정당성과 안전에 대한 집착은 통제 강박과 연극적 과시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섭리 신앙과 교회 분열
헨리 7세에서 엘리자베스 1세에 이르기까지, 튜더 군주들은 자신의 생존을 하느님의 섭리로 해석했다. 그들은 기적적인 생존의 유일한 설명이 섭리뿐이라 진정으로 믿었으며, 그 믿음은 과장된 연출과 장식으로 이어졌다. 역사가 루시 우딩이 ‘튜더 잉글랜드’에서 지적했듯, “연기와 거울(smoke and mirrors)”로 위엄을 꾸며내는 전술이었다. 불안한 현실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 집안이 집권하는 동안, 가장 극적인 ‘자기 연출’이 등장했다. 바로 ‘수위권(Supremacy)’, 곧 군주가 교회 안에서 절대적 영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는 폐위의 두려움을 종식시키려는 궁극적 연극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되레 역효과였다. 로마와의 단절은 튜더 왕조의 취약성을 심화시켰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수세기 동안 영국 우월성에 대한 선전이 필요해졌다. 잉글랜드의 예외성 의식은 본래 신앙 안에서의 영광스러운 입문에서 비롯되었으나, 튜더 이후에는 거칠고 자의적인 ‘자율성’으로 재정의되었다. 1533년 헨리의 개혁을 시작한 법령은 이렇게 선언했다.
“이 잉글랜드 왕국은 곧 제국(Empire)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의식은 군주조차 통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음 세기에는 새로운 종교적·정치적 운명을 내세운 군주 살해가 일어났다.
영국 예외주의의 교육과 유산
영국에서 성장하는 동안, 학교 교육은 항상 자기주장을 영국 정신의 핵심으로 가르쳤다. 우리는 대헌장(Magna Carta)으로 입헌 정부를 창안했다. 우리는 교황의 전제에서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우리는 1940~41년에 홀로 섰다. 심지어 오늘날 탈식민 담론조차도, “우리 제국은 독보적으로,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악했다”라는 식의 역전된 예외주의 논리를 여전히 간직한다.
몇 주 전, 윌트셔의 국회의원 대니 크루거는 나라가 본래의 그리스도교적 정체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우리는 우리 집이 반석 위에 세워졌는지 모래 위에 세워졌는지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11세기와 16세기의 개혁자들, 17세기의 청교도들, 19세기의 복음주의자들은 모두 이 나라를 우상숭배, 오류, 혹은 무관심의 벼랑에서 되돌렸습니다. 그들은 각 세대마다 이 나라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낙태와 조력자살 확대를 승인한 의회의 끔찍한 결정을 비판한 점에서 옳았다. 또한 ‘세속적’ 공적 영역의 자율성을 부인한 점도 옳았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계보학은, 반항적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그 전신들을 미화하며, 보스워스 전투의 승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고, 폭스와 셰익스피어의 엘리자베스 시대에 봉인된 가짜 역사(Potemkin history)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잉글랜드가 ‘명확히 보는 개혁자들’이었다는 신화는 언제나 정치적 무기로 남용되기 쉬웠다. 그것은 오늘날 다가올 선거에서 우리가 직면할 대중영합적 보호주의 속에서도 가장 잘 드러난다.
크루거 자신이 머지않아, 또 다른 바람직하지 않은 ‘개혁(Reform)’의 칼날에 희생될지도 모른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