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G. K. 체스터턴은 이렇게 썼다.
“진정한 군인은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뒤에 있는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싸운다.”
이 시대를 초월한 통찰은 우리가 왜 조국을 수호하는지를 꿰뚫는다.
미 국방부가 2026년 국가방위전략(NDS) 최종안을 마련하며 이번 달 말 헥세스 국방장관에게 제출하려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대답해야 할 근본적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 답은 분명하고 주저함 없는 미국의 가치, 곧 종교의 자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가치야말로 국가 전략의 닻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NDS는 종교의 자유를 국가적 중대 이익으로 천명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신념을 적과 동맹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단지 법적 권리 차원을 넘어, 각 개인의 양심의 존엄성을 향한 도덕적 헌신이며, 미국 정체성의 초석이다.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에서부터 오늘날 미국 땅에서 꽃피운 다양한 신앙 전통에 이르기까지, 종교 자유는 우리의 성품과 회복력을 길러왔다. 그러나 이 자유는 지금도 위협받고 있다. 해외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신앙을 억압하여 국민을 통제하고, 국내 문화적 압력은 신앙을 공적 영역에서 주변화하려 한다.
종교 자유야말로 미국적 가치의 정수이며, 인간이 하느님을 자유로이 예배를 드리거나 혹은 예배드리지 않을 자유를 두려움 없이 보장한다. 그리고 이는 무기보다 더 강력한 우리의 힘이 이념과 가치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2022년의 이전 NDS 개정판은 이 점에서 크게 미흡했다. 미국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국가적 이익임을 모호하게 언급했으나, 구체적 가치—특히 종교 자유—를 전혀 명시하지 않았다. 같은 해 국방부 감사실은 군 내부에서 군인들의 종교 자유가 공식적으로 경시되는 “추세”를 지적했다. 코로나 시기 양심의 자유와 관련된 소송에서 군 당국은 잇따라 패소했고, 결국 의회가 개입하여 군에 강제된 의무적 지침을 철회하게 만들었다. 종교 자유는 단순히 소홀히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척당해 온 것이다.
이는 미국의 건국 이상과 점점 유리된 국방 문화의 반영이다. 매튜 로메이어가 2021년에 출간한 저서는 이를 설득력 있게 문헌화했다. 그는 당시 우주군에서 이러한 발언 때문에 해임되었으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공군 차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승진은 과거의 오류가 반복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올해 초 JD 밴스 부통령 역시 나토 동맹국들을 향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여러분이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는지는 많이 들었다. 그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명확하지 않은 것은, 여러분이 무엇을 위해 자신을 지키려 하는가”라고 뮌헨 안보회의에서 말했다. 이는 우리 자신이 작성하는 방위 전략에도 반영되어야 할 도전이다.
일부는 방위 전략에 ‘가치’를 명시하는 일이 군비나 지정학적 사안에서 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전략의 본질은 수단과 목적의 연결에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의 안보정책은 힘의 수단에 대해서는 상세히 논의하면서도, 정작 목적이라는 본질적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2026년 NDS는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
가치를 명시하는 일은 장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막연한 수사에 머물거나, 더 나아가 국가적 존재 이유에 침묵한다면 망각과 혼란, 결단력 약화, 자신감 상실을 불러온다. 밴스가 지적했듯, 유럽의 ‘가치 중립적’ 안보정책은 사실상 허무주의에 가깝다. 미국의 2026 NDS가 이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체스터턴이 말한 군인은 ‘가정, 신앙,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싸운다. 새로운 국가방위전략은 바로 그 사랑을 천명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를 미국 가치의 중심에 놓고, 우리가 지키는 국가적 이익의 핵심으로 선언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나라와 세계는 더 강해질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