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03] 자연적 부모됨의 종말
  • 케이티 포우스트 Katy Faust is founder and president of the children's rights nonprofit Them Before Us. 비영리단체 대표

  • 십 년 전,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법적 결정(司法的 決定, judicial fiat)을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결혼의 정의만을 바꾼 것이 아니었다. ‘Obergefell 대 Hodges’ 판결은 결혼뿐 아니라 부모됨(parenthood)의 정의 자체를 재정의하였다.

    수세기 동안 영미 관습법은 자녀가 본성상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속한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해왔다. 국가의 역할은 이러한 결속을 새로이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그 질서는 무너졌다.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성인들의 ‘헌법적 권리’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친부모(親父母)에게서 분리되고 있다. 정자·난자 기증 계약이나 대리모 계약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은 정체성과 소속감에서 심각한 혼란을 겪으며, 자신의 출신에 대한 혼동을 더 크게 보고한다.

    연구들은 또한 혈연적 관계가 없는 성인과 함께 사는 아이들이(동성 부모법이 지향하는 정확한 모델) 학대와 방임을 당할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게다가 한부모 가정이나 동성 가정의 아이들은 흔히 ‘어머니에 대한 갈망(mother hunger)’ 혹은 ‘아버지에 대한 갈망(father hunger)’을 경험하는데, 이는 모성적·부성적 사랑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심리적·정서적 상처이다.

    만일 이 문제가 단지 그 아이들을 보호하는 문제에 국한된다 해도, 이미 ‘혼인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된 왜곡된 가족법에 도전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 피해는 ‘남의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됨의 재정의는 모든 부모의 권리를 약화시키고, 모든 아이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

    자연적 부모—통계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가장 깊은 유대와 헌신, 보호를 제공하는 부모—가 정치 이전적(pre-political) 권리를 가진다는 전제는 단순한 도덕적·종교적 신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17세기 에드워드 코크 경이 정식화한 ‘혼인 추정(marital presumption)’ 교리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법적 토대였다.

    자녀는 단지 자신을 낳은 어머니뿐 아니라, 그 어머니의 남편에게도 속한다고 추정되었으며, 이로써 ‘어머니-아버지-자녀’라는 불가침의 법적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다. 부모됨의 권리와 의무는 국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사실로부터 흘러나왔다. 부모의 상실(사망·이혼·유기)은 결코 정상화될 수 없는 결핍으로 간주되었고, 반드시 보완되어야 할 고통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Obergefell’ 이후 지난 10년간, 부모-자녀 관계를 고양하던 법적 장치들은 하나둘 뒤집히거나 삭제되었다. 두 남자나 두 여자가 ‘부모’가 되는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합법화하기 위해, 법원과 입법부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생물학적 연결 고리를 모두 약화시켰다. 이제 부모의 상실은 애도할 일이 아니라, ‘진보’라는 이름으로 찬양되고, 승인되고, 법전에 기록된다.

    가장 명백한 예는 오랜 세월 존속해온 친부 추정(presumption of paternity)의 붕괴이다. 혼인 추정은 거의 100%의 경우 자녀가 생물학적 아버지와 연결되도록 보장하였다. 그러나 ‘Obergefell’ 이후 이 교리는 성별 중립적 ‘부모 추정(presumption of parentage)’으로 재정의되었다. 연방대법원은 Pavan v. Smith (2017)에서 이 원칙을 두 여성에게 적용하여, 아이의 출생증명서에 두 어머니의 이름을 기재하도록 하였고, 이 과정에서 아이의 친부는 완전히 지워졌다. 한때 자녀를 두 친부모에게 연결하던 법이 이제는 한쪽 부모를 완전히 제거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부모의 기본 권리 역시 성인의 청구권에 의해 가려졌다. 수세기 동안, 적격한 생물학적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양육할 헌법적 권리를 보유했다. Troxel v. Granville (2000)에서도 대법원은 조부모의 요구를 넘어, 생물학적 부모의 양육 결정이 “특별한 존중(special weight)”을 받아야 한다고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법원은 흔히 혈연이 없는 성인들에게 완전한 부모권을 부여하며, 심지어 생물학적 부모를 대체하기도 한다. Brooke S.B. v. Elizabeth A.C.C. (2016, 뉴욕)에서는 혈연적·입양적 연계가 전혀 없는 동성 파트너를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와 동등한 법적 부모로 인정하였다. Harrison v. Harrison (2021, 테네시)에서는 알려진 정자 기증자의 부모권 청구를 거부하고, 어머니의 동성 배우자를 ‘제2의 부모’로 인정하였다.

    입양에서도 부모 동의 요건은 계약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전통적으로 입양은 친부모의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리모 계약은 출산 후 동의나 입양 절차 없이도 자동적으로 친권을 소멸시킨다. 뉴욕의 「아동-부모 안전법」(2021)은 단순한 대리모 계약만으로 법적 부모됨을 성립시킨다. 이는 부모 동의라는 전통적 보호 장치를 폐기하며, 부모와 자녀의 유전적 권리를 무시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어떤 주(州)도 출산 전 입양 확정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산모와 아이의 자연적 결속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늘날 일부 관할권에서는 대리모 계약이 임신 2~3기에 ‘출산 전 명령(pre-birth order)’으로 모자 관계를 법적으로 단절할 수 있게 한다. 태아와 산모 사이의 원초적 결합은 계약으로 무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아동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child)’ 원칙조차 재정의되었다. 전통적으로 법원은 아이가 생물학적 부모나 혈연 친척에 의해 양육되는 것이 최선이라 가정하였다. 그러나 ‘Obergefell’ 이후 이 원칙은 성인들의 낭만적 결합을 아동의 자연적 유대보다 우위에 두는 방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워싱턴주의 「통일부모법」(2017)은 법원이 유전자 검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며, 사회적 부모됨을 생물학보다 우선시한다. 뉴욕 법원도 친부 확인 검사를 ‘아이의 최선의 이익’을 이유로 거부하였다. 본래 아동 중심적 안전장치였던 원칙이 이제 성인 중심적 무기로 변질된 것이다.

    생물학적 아버지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약화되었다. 한때 혼외 아버지조차도 자녀 양육을 책임져야 했고, 대법원은 Gomez v. Perez (1973)에서 아이들이 부성적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오늘날 정자 기증자 법령은 친부를 법에서 지워버린다. 「통일부모법」은 “기증자는 보조생식으로 잉태된 아동의 부모가 아니다”라고 못박는다. 캘리포니아 가정법 도 정자 기증자의 부모 지위를 전면 배제한다. 부모됨은 단순히 ‘구매 가능한 유전 물질’로 축소된다.

    상속법 역시 재작성되었다. 수세기 동안 상속은 자연적 자녀를 우선시하였다. 자녀가 ‘생물학적 후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법적 고아 취급을 받는다. 「통일부모법」에 따르면, 정자·난자 기증자는 계약에 규정되지 않는 한 부모가 아니므로, 아이는 유전적 가족의 절반과 법적 연결이 사라진다. 콜로라도 법도 이를 반영하여,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가 생물학적 친족으로부터 상속받을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 입양의 95%가 ‘열린 입양(open adoption)’인 것은, 친가족과의 관계·연결·지식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리모 계약이나 정자·난자 구매는 ‘의도된 부모’의 안정을 위해 익명성을 선호하거나 장려한다.

    마지막으로, 자연적 보호자(natural guardianship)의 교리 자체가 무너졌다. 17세기부터 부모는 생물학적 사실을 근거로 자녀의 ‘자연적 보호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됨은 국가가 창조하는 법적 지위로 취급된다. 제3자 생식에서는 부모됨이 생물학적 연결이 아니라 ‘의도(intent)’나 ‘사회적 역할’에 의해 규정된다.

    부모됨은 점점 자연적 사실이 아니라 국가가 집행하는 계약의 영역이 되고 있다. 국가는 부모됨을 ‘부여’할 수 있는 만큼, 그것을 ‘철회’할 수도 있다. 국가가 비유전적 부모에게 친권을 부여할 수 있다면, 유전적 부모에게서 그것을 더 쉽게 빼앗을 수도 있다.

    지난 10년은 결혼의 재정의가 곧 부모됨의 재정의를 요구했음을 입증했다. 두 남자나 두 여자를 ‘부모’로 만들기 위해 법은 생물학의 우위를 지워야 했다. 비록 많은 동성 커플이 실제로 아이를 갖지 않는다 해도, 그 가능성을 위해 법 질서는 재편되어야 했다. 그 결과 모든 가정이 자녀에 대한 근원적 권리를 약화당했다.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자연이 아니라 국가에 더 많이 의존한다. 판사, 계약, 법률이 부모 자격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부모됨이 국가로부터 나온다면, 그 어떤 부모의 권리도 안전하지 않다.

    과거 법은 자녀가 태어날 때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속한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Obergefell’ 이후 이 원리는 거꾸로 뒤집혔다. 혼인이 남녀의 결합이라는 본래적 제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정치 이전적(pre-political) 관계, 정의와 문명이 의존하는 그 관계는 계속해서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가정의 안전 역시 무너질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0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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