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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신부와 악수하는 레오 14세 교황 |
바티칸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올해 5월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이 성소수자(LGBTQ)를 위한 사목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 교회 내에서 논란과 기대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1일(현지시간), 성소수자 사목 활동으로 잘 알려진 미국인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 신부가 바티칸에서 교황을 단독으로 면담했다. 약 30분간 진행된 이 만남에서 교황은 “모두를 환영하는 교회”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마틴 신부의 활동을 격려했다.
마틴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들었던 것과 같은 따뜻한 언어를 레오 14세 교황에게서도 들었다”며 “큰 위로와 용기를 받았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직후 “내가 누구를 정죄하리오”라는 발언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교회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어 동성 커플 축복을 허용하는 등 교회 내 문호를 넓히려는 개혁을 주도했다. 예수회 출신의 마틴 신부와 긴밀히 협력한 것도 그 연대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레오 14세 교황의 이번 행보는 전임자의 포용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교황청이 이 만남을 공개적으로 전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보수 진영은 즉각 반발했다. 캐나다 보수 가톨릭 매체 라이프사이트뉴스의 공동 설립자 존-헨리 웨스턴은 이번 만남을 “악몽 같은 시나리오”라고 비판했고, 미국의 보수 성향 팟캐스터 테일러 마셜은 교황과 마틴 신부의 사진을 올리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반면 성소수자 가톨릭 단체 *뉴 웨이스 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는 “과거의 억압적 접근이 이제는 역사가 됐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번 만남은 이탈리아 성소수자 가톨릭 단체가 주관하는 ‘바티칸 희년 순례’를 앞두고 이뤄졌다. 비록 교황청의 공식 주관 행사는 아니지만 희년 일정에 포함돼 있으며, 이탈리아 주교회의 고위 성직자가 미사를 집전할 예정이어서 교회의 변화 흐름을 상징하는 자리로 주목된다.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초기에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 노선을 걸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행보는 그가 전임자의 개혁적 유산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로 해석된다.
교회가 앞으로도 “todos, todos, todos(모두, 모두, 모두)”라는 외침 속에서 어디까지 포용의 지평을 넓혀갈지 주목된다.
안·희·숙 <취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