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05] 부모는 자녀의 ‘창작자’가 아니다
  • 리아 리브레스코 사전트 Leah Libresco Sargeant is the author of Arriving at Amen and blogs at Patheos. 패티오스 블로그 운영자

  • “당신이 지금 먹는 한 입이 아기에게 최선의 선택인지 자문해 보십시오.”
    한 친구는 임신 안내서를 읽다가 이 문장에 도달하자 그대로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불임치료 스타트업 오키드(Orchid)의 창립자 누르 시디키(Noor Siddiqui)는, 어머니들이 ‘완벽한 아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을 더욱 전면화하려 합니다. 그녀의 회사는 시험관 시술(IVF)로 얻어진 배아들을 대상으로, 예상되는 건강 상태, 눈 색깔, 지능지수(IQ) 등을 기준으로 부모가 형제들을 서열화할 수 있도록 배아 선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오키드 같은 기업은, IVF가 이제 미국에서 50명 중 1명꼴 출생에까지 사용될 만큼 보편화된 오늘날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IVF는 본래 불임 치료를 위한 목적을 넘어, 이미 성별 선택(다른 나라에서는 대체로 불법), 상업적 대리모 계약, 심지어 세 명의 부모로 이루어진 가정 구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자녀를 하느님의 선물로서 돌보는 존재가 아니라, 부모가 ‘저술(著述)하는 작품’처럼 여기는 극단적 사고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시디키는 보험이 배아 선별을 보장하기를 바라며, 나아가 거의 모든 가정에서 - 심지어 의무적으로 - 이 절차가 적용되기를 희망한다고 분명히 밝혀왔습니다. 그녀는 비판을 받자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카시트(유아용 안전 의자)를 생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모의 직무는 아이를 보호하는 것이며, 그들의 유전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최선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예방 가능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중요한 점은, 시디키가 제안하는 것은 ‘CRISPR 유전자 치료’처럼 특정 병인 유전자를 잘라내어 ‘그 아이 자체’를 치유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녀는 이미 잉태된 자녀들 중에서 ‘부모가 양육하고 싶은’ 아이를 선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상품은 치료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아이의 삶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식의 담론에 면역력을 상실해가는 듯 보입니다. 임신 중 극단적 식이강박, 출산 후 애착양육에 대한 불안, 학교 시간 내내 아이에게 문자를 보내는 습관 등 이런 것들은 “자녀가 연약해서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공포를 드러냅니다. 심리상담의 영역에서도 흔히 부모의 양육 실패를 원인으로 현재의 불행을 해석하려는 유행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이렇게 묻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눈먼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느님의 일이 드러나려는 것이다”(요한 9,3).

    우리 모두는 상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그 원인을 명확히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상처와 치유 모두에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성 요아킴과 안나, 성 요셉과 동정 마리아를 제외한 그 어떤 부모도 죄 없는 자녀를 기를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한 그 어떤 자녀도 죄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세속 시대에 시디키의 ‘완벽주의’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반론은, 경제학자 에밀리 오스터(Emily Oster)의 임신 안내서 ‘Expecting Better(더 나은 것을 기대하며)’ 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스터는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지침”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위험을 제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실적인 최저 수준으로 낮추는 것조차 종종 부모의 희생에 비해 가치가 없습니다.

    그녀는 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소위 ‘파레토 법칙(80대 20의 원칙)’을 설명합니다. 즉, 원하는 결과의 80%는 대개 20%의 노력으로 얻어진다는 것입니다. 임신중독증(전자간증) 증상 인지와 같은 큰 위험 요소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반면, 샌드위치 고기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식의 미세한 위험 제거는 효과는 미미하면서 부담은 크다는 것이지요.

    부모는 결국 “제로가 아닌 위험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신중함과 함께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의 도약을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노래방에서 자신의 음역대 끝 음을 시도하다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아픈 친구를 방문했다가 집안 식구 모두가 감기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철봉 놀이에서 첫 시도에 떨어져 팔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삶을 배우는 길’입니다.

    아이들의 게놈을 들여다보든 그렇지 않든, 부모는 자녀가 어떤 재능을 선물로 받을지 미리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 하나—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을 끝까지 흘려보내어, 마지막에는 빈손으로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쥐고 있는 ‘저술가의 펜’으로는 결코 써낼 수 없는 삶을, 그분께서 저희 아이들에게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03 06:52]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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