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3부작 『나자렛 예수』 제1권에서 고대 문헌의 문학적 형식과 편집적 ‘층위들’을 분석하는 역사비평적 방법이 성경 이해에 기여한 바를 높이 평가하였다. 동시에 그분은 그러한 방법의 본질적인 성과는 이미 거두어졌으며, 이제는 보다 해체적인 분석을 넘어서는 성경 해석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곧, 성경을 “하나의 성경이라는 전체성 속에서 개별 본문을 읽고, 그 전체가 개별 본문에 빛을 비추게 하며”,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을 고려하고, 성경을 교회의 신앙과 그 신앙 안에 얽혀 있는 진리들의 맥락 안에서 읽는 접근이다.
그렇다면 교회의 최근 “시노달리타스(synodality, 공의회적 교회성)” 탐구에 대해서도 유사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이미 그 본질적인 열매는 수확되었고, 이제 그 열매를 교회의 사명—곧, (선출 이후 줄곧 레오 교황이 상기시켜 온 바와 같이) 인류의 빛이요 모든 인간 존재의 근본 질문에 대한 해답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에 적용할 때라는 것이다.
첫째, 세계 가톨릭의 활력 있는 부분이 자리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젊은 교회들이 목소리를 내게 되었고, 시노드 과정이 진행되면서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교황 레오 선출 이전 추기경단의 논의 속에서, 소위 “주변부” 출신의 추기경들에게 “시노달리타스”란 바로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결과이다.
둘째, 세례 받은 모든 가톨릭 신자가 복음을 전할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보편적 선교 명령이 다시 강조되었다. 또한 그러한 선교 사명을 가능케 하는 보편적 성화의 소명도 재확인되었다. 역시 귀중한 열매이다.
셋째, 성직주의적 카스트 체제가 복음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시노달 과정은, 자신이 이끄는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협의하며 협력하는 성직자가 가장 효과적인 목자임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협의적·공동체적 구조가 이미 세계 교회의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항구적 선교 교회’가 되는 것은 로마 교황청이나 교구청의 사무실 배치가 아니라, 성직자들이 평신도를 복음화로 파견하고 권능을 부여하는 것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었다.
넷째, 세계 교회의 살아 있는 부분들은 성공적인 복음화란 가톨릭 신앙 전체를 온전히 제시하고 살아내는 것임을 강력히 증언하였다. 곧, ‘어쩌면의 교회’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앙의 삶이 여정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 여정은 목적지를 지녀야 하며, 교리와 의로운 삶에 대한 명료성이 그 목적지—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 나라—에 집중하게 해준다. 이러한 진리에 대한 담대한 증언 역시 시노달리타스의 열매였다.
시노드 과정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며, 2021–2024년의 시노드가 좋은 열매를 맺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시노딩” 자체를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3년의 열매를 선교와 복음화에 적용할 때라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노드 사무국이 최근 발표한 「2025–2028 시노드 실행 단계의 경로」라는 문서가 과연 이러한 전환을 어떻게 용이하게 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문서는 3년에 걸친 국가·대륙 차원의 회의와, 로마에서의 ‘교회 총회(Ecclesial Assembly)’라는 정의되지 않은 전 세계적 회합을 전망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더구나, 시노드 사무국의 베크카르 수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새 과정은 “대립하는 진영 간의 긴장”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서로 다른 지역 교회 안에서 “역동성”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 1700주년을 맞은 지금, 제럴드 머레이 신부가 지적하듯이 만일 당시 교회가 이런 방식으로 임했다면, 오늘날 교회가 보편적으로 고백하는 신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니케아에서 교회의 “긴장”은 역동적으로 관리된 것이 아니라 단호히 해결되었다. 아리우스파의 그리스도 신성 부정은 권위 있게 배격되었고,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앙은 권위 있게 확증되었다.
따라서 2021–2024년 시노드 과정의 성과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본질적 열매는 이미 수확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회의나 이미 확정된 가톨릭 신앙과 실천을 두고 맴도는 논쟁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친 바와 같이 하느님에 대한 진리와 인간에 대한 진리를 계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