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동안 잉글랜드 곳곳에서는 성 게오르기오스의 깃발(흰 바탕 위에 붉은 십자가)이 원형 교차로, 차량, 횡단보도 등 다양한 곳에 크고 작은 솜씨로 칠해져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상징의 기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잉글랜드의 국기처럼 자리 잡게 되었는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국기(flag)”는 중세 시기에 기사의 문장(coat of arms)과 전투에서 앞세운 깃발(banner)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특정한 “국가”라기보다 군주나 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충성의 표지였다.
왕이나 귀족의 문장은 그의 집사와 관리들이 ‘리버리(livery, 제복)’로 착용했으며, 문자 그대로의 ‘문장의 옷(coat of arms)’―문장을 수놓은 서코트(surcoat)나 터바드(tabard)―는 오늘날에도 영국과 캐나다의 문장관들이 입는다. 문장학(heraldry)은 12세기에 시작되어 13세기에 본격화되었고, 그 유행은 고대의 영웅, 성인, 심지어 하느님께까지 문장을 부여하는 데까지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성 게오르기오스 또한 자신만의 문장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깃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성 게오르기오스와 붉은 십자가가 흰 바탕에 그려진 문장(문장학 용어로는 “argent a cross gules”)이 연결된 것은 12세기경으로 보인다. 그 출발지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제노바 공화국으로, 제노바의 깃발은 잉글랜드의 것과 동일하다. 그러나 당시 붉은 십자가는 이미 십자군의 상징이었다. 십자군에 나서려는 이들은 정결을 의미하는 흰 망토를 걸치고, 불신자와 싸울 서원을 ‘십자가를 받는다’는 의식으로 표현했는데, 이는 망토에 붉은 십자가를 덧붙이는 방식이었다. 붉은 십자가는 곧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과 여러 십자군 수도회의 표징이 되었고, 성 게오르기오스는 비공식적인 십자군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사자심왕(獅子心王) 리처드로부터 시작해 잉글랜드의 왕들은 십자군과 자신을 연관 짓기를 원했으나, 성 게오르기오스의 십자가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에드워드 1세(재위 1272–1307) 시대였다. 그의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와의 전쟁은 ‘잉글랜드적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강화했다.
1290년대에 에드워드는 병사들에게 ‘성 게오르기오스의 문장’을 단 완장을 착용하게 했는데, 이는 사실 군주 개인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는 왕의 개인기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다른 성인들―성 에드문드, 성 에드워드―의 깃발도 함께 전장에 세웠다.
그럼에도 성 게오르기오스의 십자가는 전투의 혼란 속에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장점이 있었고, 1337년에 시작된 백년전쟁은 잉글랜드의 독자적 표징을 절실히 요구했다. 1345–46년에 에드워드 3세의 무기관리관은 성 게오르기오스의 문장이 새겨진 작은 깃발(pennoncels) 800개를 제작하여 창끝에 달게 했고, 붉은 십자가의 깃발은 잉글랜드 군선의 돛대 위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왕의 상징이자 군사 신호였던 표지가 점차 ‘국기’와 같은 성격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1348년 에드워드 3세가 가터 기사단을 창설하면서(이는 1325년 창립된 헝가리 성 게오르기오스 기사단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성 게오르기오스의 십자가는 경쟁하던 다른 상징들을 제치고 잉글랜드 왕권의 주요 표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성화(聖化)’된 것은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였다. 당시 연대기 『브루트(Brut)』에 따르면 헨리 5세는 실제로 병사들을 성 게오르기오스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키며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성 게오르기오스의 이름으로, 기수를 앞으로! 오, 성 게오르기오스여, 오늘 우리를 도우소서!”
셰익스피어가 이를 희곡으로 각색하기 훨씬 전부터 성 게오르기오스의 십자가는 왕권뿐 아니라 ‘잉글랜드와 잉글랜드다움’을 상징하게 되었고, 아쟁쿠르의 참된 영웅은 평범한 잉글랜드 궁수들이었다. 이러한 ‘민중적 울림’은 잉글랜드 내전 시기에도 증폭되어, 성 게오르기오스의 단순한 십자가는 의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도 영국은 공식 국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국기를 규정하는 법도 없다. 엄밀히 말하면,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는 군주의 개인기일 뿐이다. 그래서 1997년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서거했을 때 엘리자베스 2세가 처음에는 버킹엄 궁 위의 유니언 플래그를 조기로 내리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다.
성 게오르기오스의 깃발은 더욱 비공식적인데, 주로 국가적 스포츠 경기와 연결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4월 23일 성 게오르기오스 축일(St. George’s Day)을 기념하는 시·도 차원의 축제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오래되었으나 법적으로는 비공식적인 이 깃발은 무엇보다도 잉글랜드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민중들과 연관되어 있으며, 특정 왕조나 국가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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