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12] 마틴 주교, 드러내지 말아야 할 본심을 드러내다
  • 데이미언 톰프슨 Damian Thompson is associate editor at The Spectator. 부편집인

  •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노스캐롤라이나 샬럿 가톨릭 고등학교의 학생들은 2017년 한 교사가 세상을 떠난 형제를 기리기 위해 모금하여 설치한 제대 울타리(Communion rail)에서 성체를 모실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제가 성찬 전례 때 성소를 떠나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졌다. 학생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성체를 모시고자 한다면 바닥에 무릎을 꿇어야만 한다.

    이 명령은 샬럿 교구장 미카엘 마틴 주교에게서 나왔다. 그는 지난해 착좌한 프란치스칸 출신 주교로, 5월에 교구 내 4개 본당에서 봉헌되던 전통 라틴 미사를 제한하고, 샬럿 북쪽의 한 성당에서만 거행하도록 결정했다. 그 결과 ‘usus antiquior(전례 개혁 이전의 로마 전례 형식)’을 사랑하는 신자들은 오랜 길을 마다않고 이동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샬럿 가톨릭 고교에서 거행되는 미사는 현대식 미사 통상문(Missale Romanum, Novus Ordo)을 따르지만, 이번 제대 울타리 금지는 ‘Traditionis Custodes (전통의 수호자들)’에 따른 것이 아니라 마틴 주교 개인의 편견에서 비롯된 조치였다.

    마틴 주교는 금지하고 싶어하는 목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성체 분배 시 무릎 꿇기, ‘ad orientem (사제가 동쪽을 향해 드리는 전례)’, 로마식 제의, 라틴어 성가, 제대 위 촛대 등이 그 대상이다. 사제는 미사 경본대(missal stand)를 사용하지 못하며, 신자들은 성체 축성 직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같은 경건한 고백조차 해서는 안 된다.

    최근 한 미국의 전통주의 가톨릭 신자는 나와 대화 중 이렇게 회상했다. “70년대 후반, 옛 신심을 없애는 데 열을 올리던 젊고 가혹한 사제들을 기억합니까? 그들이 이제 주교가 되었지요.” 마틴 주교는 바로 그런 세대의 전형적 사례이며, 1961년생으로 아마 그 마지막 물결에 속할 것이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의 교구, 그리고 바티칸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개혁자들은 자신들이 죽기 전에 라틴 미사가 사라질 것이라 믿었지만, 오늘날의 이 늙은 자유주의자들은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젊은 사제들과 청소년 평신도들에 의해 다시 불붙은 전통 전례의 부흥이다.

    지난 6월, 경건한 15세 소년의 영성이 무자비한 공격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교황청립 대학교의 성사신학 교수이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문을 지낸 평신도 전례학자 안드레아 그릴로가 그 대상이었다. 그릴로는 전통 라틴 미사의 불굴의 적으로, ‘Traditionis Custodes’의 설계자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그가 조롱한 대상은 라틴 미사를 따르던 소년이 아니었다. 바로 2006년에 선종하고 21세기에 들어 최초로 시성된 밀레니얼 성인, 카를로 아쿠티스였다.

    그릴로 교수는 학술지 ‘Munera (사명)’에서 아쿠티스를 두고 “너무 낡고, 무겁고, 강박적이며,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집착한 성체 신학을 전했다”고 비난했고, “성체 기적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가졌다며 공격했다. 그가 지난 성령강림 대축일에 1만 9천 명의 청년이 파리에서 샤르트르까지 걸으며 드린 삼일간의 전통 라틴 순례를 보고 경악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쿠티스 성인을 향한 그의 독설은, 교황 프란치스코 지지 진영의 급진주의자들이 성체 조배(Eucharistic Adoration) 자체를 ‘잘못된 영성’으로 낙인찍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체 조배는 오늘날 수많은 현대 전례 본당과 전통 미사 공동체 모두에서 청년들에게 깊은 호소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성스러움의 회복’ 현상은 가톨릭만이 아니라 성공회, 정교회 전통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정통 기독교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아직 다 헤아리기 어렵다. 언론에서 흔히 “Z세대가 종교로 돌아오고 있다”는 식으로 단편적 증거를 과장하지만, 실제로 서구 사회에서 전반적 교회 참석이 급감한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라틴 미사를 위해 샤르트르에 모여든 1만 9천 명의 청년 순례자들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는 진지한 연구가 필요한 현상이며, 젊은 유대인이나 무슬림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통 실천(orthopraxy)의 성장과 비교할 여지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마틴 주교가 고등학교 무릎꿇개 배치를 일일이 간섭하고, 그릴로 교수가 최초의 밀레니얼 성인을 조롱하게 된 배경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불필요한 언론의 관심을 불러들여 오히려 동지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그들의 당혹감은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들은 교황 레오 14세 시대에 자신들이 얼마만큼 교회 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불안에 휩싸여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공격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로마 전례의 두 가지 형태가 공존하는 시대에 걸맞는 상투적 표현을 쓰자면, 마틴 주교와 그릴로 교수는 드러내지 말아야 할 본심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10 06:41]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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