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13] 미국을 다시 진지하게 만들자
  • 조지 바이겔 George Weigel is Distinguished Senior Fellow of Washington, D.C.’s Ethics and Public Policy Center, where he holds the William E. Simon Chair in Catholic Studies. (워싱턴 D.C. 윤리 및 공공정책 센터 수석 연구원)

  • 7월과 8월 대부분을 폴란드에서 강의를 하고 캐나다에서 휴가를 보내며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냈기에, 이른바 ‘크래커 배럴(미국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 로고 소동’의 전말을 놓쳤다.

    그러나 내가 접한 단편적 장면만 보아도, 로고에서 백인 남성을 삭제한 것이 “또 다른 기업의 각성(woke) 굴복”이냐를 두고 벌어진 이 우스꽝스러운 논쟁과, 그 인물을 다시 로고에 복원한 것이 “민주주의의 종말을 재촉하는 조치”냐는 두 번째 어처구니없는 논쟁을 지켜보며, 이 나라가 근본적으로 ‘진지함’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짓밟히고 고통받는 한 나라가 생존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애타게 찾고 있는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대학입학적성시험(SAT)을 설계하는 교육관료들은, X(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의해 집중력이 형성된 세대에게 750단어 텍스트(이 칼럼과 같은 글)를 읽게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이제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25~150단어짜리 글을 읽고 답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초등학생 대다수가 기초 문해력과 산수 능력에서 낙제하고 있는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볼티모어의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를 재건하는 데, 1930~31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을 때보다 세 배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미국 십대 청소년 네 명 중 한 명이 스스로를 ‘LGBTQ’라고 정체화한다고 보고한다. 한편 미국소아과학회는 청소년의 신체를 훼손하는 시술에 대한 법적 제한을 반대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주 의회는 의석 재획정이라는 고대적 정치술수를 전례 없는 수준으로 남용하여, 선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더 심각하게 훼손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폐증과 백신에 대해 난센스를 떠들며, 공중보건 제도를 더 정치화하고, 중요한 연구비를 삭감하며, 아동 질병 예방의 가장 기초적 규범까지 흔들어 책임 있는 의사들의 삶을 심각하게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인플루언서’ 터커 칼슨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잘못된 편에 섰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환영하며 논의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분노 섞인 글들이 정치 스펙트럼 전반에서 그날의 ‘뉴스’를 규정하며, 우스꽝스럽게도 ‘공적 담론’이라 불리는 것의 틀을 짜낸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꼭 필요한 식량·의료 원조 프로그램이, 원래 존재해서는 안 될 각성적 ‘원조’와 함께 통째로 잘려나간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사실상 폐허가 되었고, ‘자유유럽방송/자유라디오’ 등 미국이 억압 국가의 용감한 인권운동가들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에도 대규모 예산 삭감이 단행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헌법 제1조는 ‘예비선거에서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다수의 상·하원 의원들의 뇌리 속에서 사실상 폐기된 것 같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미국 국방산업의 무능과 국방부의 얽히고설킨 조달 체계는 대만 해협과 그 밖의 지역에서의 억제력을 약화시킨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한때 위대했던 미국 도시들이 점점 더 심각한 기능 마비 상태로 추락하며, 수백만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스포츠 도박에 1,500억 달러가 쓰였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신앙 실천은 쇠퇴하고, 문화는 점점 더 냉소적이고 독성적으로 변하며, 어린이들의 순결과 무구함은 키보드의 한 번의 잘못된 터치로 파괴된다. 그런데—미국인들은 크래커 배럴 로고에 집착하고 있다?

    혹시 내가 과민반응하는 것일까. 어쩌면 ‘크래커 배럴 로고 소동’은 그저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화면 속에 잠시 스쳐간 잡음이었을 뿐일지도 모른다. 아마 대부분의 미국인은, 클릭 미끼를 양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해외에 머물던 두 달 동안, 미국을 사랑하는 이웃 나라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위대한 공화국은 진지한 공적 토론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까? 왜 미국 정치가 고함과 저속한 언사에 지배당하고 있습니까? 방 안에는 언제쯤 ‘성숙한 어른들’이 들어올까요?”

    이것은 진지한 질문들이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진지한 나라라면, 그 질문들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11 07:22]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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