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거의 성공할 뻔했을 때, 내 마음은 1968년 4월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오늘 찰리 커크가 피격되어 사망했다는 끔찍한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다시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떠올렸다.
오해하지 마시라. 킹과 커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고 전혀 다른 신념을 가졌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것이다. 두 사람 모두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운동을 대표했다는 것이다.
시민권 운동은 미국 공적 삶에 혁명적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인종에 관한 오래된 합의를 무너뜨렸고,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운동의 성공은 많은 백인들에게 불신과 분노, 그리고 원한을 남겼다. 나는 그 시절 어린아이였지만, 어른들이 입에 담는 추악한 말들, 사실상 언어적 폭력에 해당하는 감정적 분노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은 자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또 다른 공적 삶의 혁명 속에 살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다문화주의와 개방사회적 합의가 도전을 받고 있다. (나는 『강한 신들의 귀환』에서, 이 합의가 전후 자유주의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점점 더 많은 다수의 국민이 국경과 민족적 재통합—즉 ‘아메리카 퍼스트’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혁명에서 분노하는 이들은 남부의 백인이 아니다. 오히려 불신과 분노, 원한을 드러내는 것은 교육받은 엘리트들, 특히 베이비붐 세대로서, 지금까지 다른 합의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이들이다. 『애틀랜틱』의 최근 호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앤 애플바움과 다른 필자들은 정기적으로 절박하고도 공포에 찬 경고를 내놓으며, 트럼프를 히틀러의 재림으로 묘사한다.
커크가 이끌던 단체는 ‘터닝포인트 USA’였다. 그의 열망은 젊은이들을 좌파의 어젠다로부터 돌려세우고 보수적 시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문이 활짝 열린 상태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여론조사는 Z세대의 태도가 점점 우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무대는 대학이었는데, 대학은 다문화주의와 개방사회 합의라는 이미 쇠퇴해가는 교리를 지닌 불굴의 ‘바티칸’이었다. 나는 아이비리그 교수들의 사적 대화를 엿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 사이에서 이 ‘분위기 전환’에 대한 공포와 불신이 오가고 있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많은 논평가들이 지적했듯, 폭력적이고 히스테릭한 수사는 불안정한 개인이 폭력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킹을 살해한 제임스 얼 레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무질서한 영혼은 시민권 운동에 적대하던 이들의 깊은 증오심에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킹이야말로 그 운동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커크의 암살자 역시 유사하게, 오늘날 좌파 진영이 보여주는 분노와 격분에 유혹되었을 것이다. 좌파는 이미 죽어가는 개방사회 합의의 수호자이다. 그들은 트럼프와 그의 운동이 단순히 백악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적 합의를 힘있게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한다. 예컨대 『네이션』 워싱턴 지국장 크리스 레만은 최근 『하퍼스』에서 존슨과 튠을 “비굴한 MAGA 부관들”이라고 비난했다.
나는 애플바움과 레만을 커크의 죽음 때문에 탓하지 않는다. 그들은 낡고 죽어가는 합의를 여전히 수많은 악으로부터의 필수 방벽으로 여기고 있다. 당연히 그들은 그것을 격렬히 수호한다. 그리고 이 끔찍한 사건을 강력히 규탄한 낸시 펠로시, 카말라 해리스, 그리고 다른 민주당 지도자들의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는 손가락질 대신, 역사 속에서 암살이란 언제나 징후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열정적 갈등에서 피어난 어두운 열매였다. 우리는 이 갈등에 문명적 품위를 불어넣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신앙의 ‘양심’은 결코 타협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커크는 옳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숨김없이 말해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뼛속 깊이 느끼고 있듯이, 지금은 전환점이다. 단순히 경제나 외교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국경 개방, 다문화 이데올로기, LGBT 옹호자들, 그리고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만들어낸 미국 사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앙, 가정, 국기’ 위에 뿌리내린 사회를 원한다.
그리고 커크처럼, 우리는 폭동을 통해 그 사회를 이루려 하지 않는다. 그는 공개 토론에 전념했다. 그는 다문화주의 프로젝트가 실패했음을 알았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좌파의 24시간 여론 검열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는 심의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이 같은 뜻을 지닌 미국인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커크와 그의 가족, 친구들을 위해 애도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는 고통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으며, 특히 이렇게 사악한 상황 속에서 더욱 무겁다. 그러나 나는 작은 위로를 찾는다. 암살은 단순한 징후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기폭제가 된다. 무고한 피는 강력한 실재다. 그것은 역사의 바퀴를 움직인다. 나는 커크의 피살이 바로 이런 효과를 낳을 것이라 믿는다.
2025년 9월 10일의 그 사악한 행위는 커크가 맞서 싸운, 이미 실패한 합의의 절망을 드러낼 것이다. 그가 우리를 향해 열망했던 합의, 즉 ‘신앙, 가정, 국기’를 회복하는 합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