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SA 가톨릭 119] 돕슨처럼 살아갈 용기
  • 윌리엄 울프 William Wolfe is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Center for Baptist Leadership and a former senior official at the Departments of State and Defense. ‘침례교 지도력 센터’ 사무총장

  • 제리 폴웰, R. C. 스프로울, 존 맥아더, 그리고 이제 제임스 돕슨. 지난 20여 년간, 수백만 미국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정신, 그리고 영혼을 빚어낸 보수 복음주의 거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며, 한 세대가 저물어 갔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아니, 누구인가? 제임스 돕슨 박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신입니다.” 특히 부모라면 말이다.

    돕슨은 수십 년간 미국 사회의 기본적 토대―믿음, 가정, 자유―를 옹호하며 봉사한 끝에, 8월 21일 마침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물론 그의 소명은 언제나 “가정에 초점을 두는” 데 있었다.

    많은 논자들이 “복음주의 엘리트”의 부재를 지적한다. 돕슨의 유산을 떠올릴 때 흔히 연상되는 것은 상류사회적 교양과는 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체벌 교육, 라디오 드라마 「오디세이 모험」, 순결 문화, 동성애 운동에 대한 단호한 반대, 그리고 2016년 도널드 트럼프 지지 선언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엘리트였다. 아동발달심리학 박사 학위를 지니고, 14년간 소아과 임상 조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자격 있는 전문가로서, 세속적·심리학적·치료주의적 양육론이 밀려들던 반세기 전부터 우려를 감지하고, 그에 맞서 자신의 가장 논쟁적인 저서이자 베스트셀러인 「훈육의 용기(Dare to Discipline)」를 집필했다.

    수십 년 동안, 돕슨의 방법을 비판하거나 수용한 이들 사이에 ‘성전’과 같은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 핵심은 성경적으로 방어 가능한 단순한 원칙이다. 곧 부모가 가정을 주도해야 하며, 순종을 요구하고, 자녀를 단련하며, 죄와 회개의 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하고, 필요할 때는 매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반은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그리스도교 역사 전반에 걸쳐 흔한 가르침이었다.

    「훈육의 용기」의 성공 위에, 돕슨은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라는 미디어 사도직을 세웠다. 그는 영향력을 정치적 실천으로 전환했고, 2005년에는 뉴욕타임스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지도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는 당시 부시 대통령이 대법원에 올바른 인사를 임명하지 않거나 민주당이 훌륭한 인사를 막는다면, “전국적으로 거대한 전투를 벌이겠다”고 경고했었다.

    오늘날 콜로라도 스프링스가 복음주의 중심지가 된 것도 1991년 돕슨이 본부를 그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는 학위, 저술, 방송, 정치적 영향력, 문화적 권위, 심지어 도시까지―모든 것을 세워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은 크다. 필자는 돕슨을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은 그를 알았다. 사춘기 시절 그의 방법론 적용에 불평도 했지만, 필자는 분명 그 혜택을 입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교훈이 나온다. ‘가정을 위해 싸우라.’

    체벌에 대한 견해가 어떠하든, 돕슨은 평생을 그리스도교 가정이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도록 독려하는 데 바쳤다. 그는 신명기 6장 7–8절의 “부모는 자녀에게 주님의 계명을 새겨야 한다”는 깊은 신비를 이해했다. 디지털 시대에 돕슨적 양육이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으나, 교훈은 분명하다. 부모, 특히 아버지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 사명을 훨씬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둘째, ‘결혼을 위해 싸우라.’ 돕슨은 1973년, 미국심리학회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제외하자 이에 항거하며 사직했다. 그는 “미끄러운 경사길”로 들어서기 전에 먼저 발을 뗄 혜안을 지녔다.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생물학과 자연,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끊으려는 현대의 혁명적 시도가 어떤 파국을 초래할 것인지를 경고했다. 그의 업적은 동성애 로비 진영조차 “89세에 숨진 막강한 영향력의 기독교 광신자”라 칭할 정도였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오히려 그러한 비난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셋째, ‘투쟁을 사랑하라.’ 알버트 몰러는 돕슨을 기리며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고, 돕슨 박사는 이를 알았다.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늘날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좌파가 자신들을 싫어하면, 혹은 공화당 내 세속파가 자신들을 ‘이상하다’고 하면, 혹은 온라인에서 조롱받으면 무언가 잘못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오히려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돕슨은 그렇게 믿었다.

    만일 돕슨이 가정과 결혼을 위해 싸우지 않았고, 싸움 자체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의 죽음 직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의 무덤 앞에서 환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돕슨은 자격을 갖춘 지도자였다. 우리가 지금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엘리트’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용기’를 지녔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한 덕행이다. 어떤 이들은 그를 “구태스럽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마 우리는 더 많은 “구태”가 필요할 것이다.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훈육할 용기”뿐 아니라 “돕슨처럼 될 용기”를 가진다면, 미국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 리베르타임즈에서는 '미국 가톨릭 지성(First Things)'의 소식을 오피니언란에 연재합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변화와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편집위원실 -
  • 글쓴날 : [25-09-17 06:34]
    • 리베르타임즈 기자[libertimes.k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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